검찰은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차명재산과 비자금의 해외 도피를 지시하고 보고받았다는 구체적인 정황이 담긴 편지 내용을 확인한 것으로 26일 알려졌다.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부장 윤대진)는 2007년 5월 이 회장의 ‘금고지기’였던 당시 그룹 재무2팀장 이모 씨가 이 회장에게 보낸 편지에 이 같은 정황을 보여주는 표현을 담은 사실을 확인했다. 이 편지는 이 씨가 이 회장의 비자금 중 230억 원을 유용한 사실이 드러나 퇴사한 뒤 복직을 요구하며 쓴 30여 장 분량으로, 사실상 협박용이었다. 이 편지는 2007∼2008년 경찰 수사 때 이 씨에게서 압수한 휴대용 저장장치인 USB 메모리에 저장돼 있었다. 검찰은 이 USB 메모리를 복원해 편지와 국내 차명자산 관리 파일 등을 찾아냈다.
검찰이 확보한 이 편지에는 ‘그때 말씀하신 국내 기타 자산은…’ ‘투자 건은 잘 추진하고 있었습니다’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검찰은 ‘국내 기타 자산’을 이 회장의 국내 차명재산과 비자금으로 보고 있다. 편지와 함께 USB 메모리에서 발견된 국내 차명재산 관리 파일에 차명재산과 비자금 운용 명세가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투자’는 재산 해외도피의 의미로 쓴 것으로 보고 있다. 이 편지에는 본보가 24일 단독 보도한 스위스 최대 은행 UBS 관계자와 이 회장의 회동도 언급돼 있는데, 이 씨가 이 회장의 차명재산과 비자금을 UBS 비밀계좌에 예치한 과정을 설명하면서 ‘투자’로 표현한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검찰은 국외로 빼돌려진 차명재산과 비자금을 ‘해외 기타 자산’으로 표현한 사실도 파악했다. 편지에는 UBS에 예치된 돈이 이 회장의 해외 부동산 구입에 사용된 정황도 나타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씨가 이런 내용을 편지에 쓴 것은 자신이 관여한 이 회장의 비위 사실을 언급해 복직 약속을 받아내기 위해서였던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사실상 ‘협박편지’라는 것이다. 또 이 씨는 편지에서 이 회장의 차명재산 등을 해외로 빼돌리는 과정을 설명하며 ‘BVI’라는 표현도 사용했다. 이는 브리티시 버진 아일랜드(British Virgin Islands)의 줄임말로 조세피난처인 영국령 버진아일랜드를 가리킨다. 최근 검찰에 소환된 이 씨는 수사에 협조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 씨는 복직되지 않았지만 CJ 측과 모종의 거래가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재계에 무성했다.
한편 2008년 CJ그룹의 국세청 세무조사 무마 로비 의혹을 받았던 천신일 세중나모그룹 회장은 지난주 일본으로 출국한 것으로 확인됐다. 천 회장 측 관계자는 26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언제 돌아올지는 모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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