檢, 해당업체 사무실 압수수색… 순금-명품가방 등 전달 문건 확보
공사수주 청탁 대가 여부 집중 조사
건설업체가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재직 시절 10여 차례에 걸쳐 원 전 원장에게 고가의 선물을 건넨 의혹을 검찰이 포착하고 건설사를 압수수색한 것으로 2일 확인됐다. 이 사건은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이 담당하는 국정원 정치개입 의혹 사건과는 별도로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 여환섭)는 지난주 서울 중구에 있는 H건설사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또 검찰은 이 건설사 대표 H 씨(62)도 불러 원 전 원장에게 선물을 건넸는지, 건넸다면 대가성이 있었는지를 추궁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 회사가 원 전 원장에게 공사 수주 등에 도움을 달라는 청탁과 함께 선물을 건넨 단서를 포착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이 회사가 수백억 원의 분식회계를 통해 비자금을 조성한 것으로 보고 수사 중이다. 이 회사를 압수수색해 확보한 자료에는 상당량의 순금을 포함해 페라가모 남성용 손가방과 여성용 핸드백, 산삼을 비롯한 고가의 건강식품 등 수천만 원 상당의 선물을 원 전 원장에게 건넸다고 적힌 것으로 알려졌다. H 대표는 검찰 조사에서 “친분관계에 따라 선물을 건넸을 뿐 대가성은 없다. 돈은 건네지 않았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분식회계 및 비자금 조성 등의 혐의로 H 씨에 대해 조만간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H건설은 원 전 원장이 국정원장으로 재직하던 기간에 공공기관이 발주한 공사의 하청을 여러 건 따냈다. H건설은 2010년 한국전력의 자회사인 한국남부발전이 발주한 삼척그린파워발전소 건설공사에 참여했다. 삼척그린파워발전소 대비공사를 수주한 D중공업 컨소시엄으로부터 2011년 2월 이 공사의 일부인 2공구 용지 정지 공사를 하청받은 것. 당시 계약금액은 173억1000만 원이었다. 2010년 12월 기준 H건설의 총자산이 79억9800여만 원이었던 걸 감안할 때 상당히 큰 규모의 계약이었다. 당시 H건설은 D중공업 컨소시엄의 협력업체가 아니었는데도 하도급 입찰에 참여해 공사를 따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H건설은 토목공사 초창기에 드는 거액의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고 경영이 악화돼 지난해 11월 말 폐업했다. 검찰은 한국남부발전 이모 대표를 최근 불러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H건설은 한국전력의 또 다른 자회사인 한국동서발전이 발주한 당진화력발전소 9·10호기 토건공사에 지난해 4월 하청업체로 들어가려다 시공사인 삼성물산에 거절당하기도 했다. 본보 취재팀은 당시 한국동서발전이 공문을 보내 H건설을 하청업체로 추천한 사실을 확인했다. 삼성물산 측은 H건설이 공사를 맡기에 적절치 않다고 판단해 거절했다. 이길구 당시 한국동서발전 전 사장은 본보와의 통화에서 “H건설의 H 대표가 하청업체를 맡게 해달라고 부탁했던 건 사실이지만 내 선에서 거절했다”며 “삼성물산에 공문을 보낸 적은 결코 없다”고 말했다. 이어 “H 대표와 원 전 원장 사이에 모종의 관계가 있어 보였지만 자세히 알아보지 않았다”고 말했다.
H건설은 행정복합중심도시건설청(행복청)이 발주한 ‘정안 나들목∼세종시’ 도로 건설에도 참여했다가 공사 도중 도산하면서 굴착기, 덤프트럭, 포장장비 등에 대한 사용대금 2억5000여만 원을 지급하지 않았다. 2008년엔 대전의 상징건물이었던 ‘중앙데파트’의 폭파·해체 공사를 주도했다.
취재팀이 4월 말경 서울 중구 남산로에 있는 H건설 사무실을 찾았을 때 주소지는 주차장으로 변해 있었다. 그 대신 그 옆에 조그마한 가건물이 한 채 있었다. 사무실을 홀로 지키던 직원 A 씨는 “삼척그린파워발전소 대비공사 2공구 공사가 H건설에 독이 됐다고 들었다. 규모가 작은 회사가 큰 공사를 맡았으니 무리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취재팀이 H건설 주소로 등록된 경기 파주시의 또 다른 사무실을 찾아갔지만 텅 비어 있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