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MBC 120부작 일일드라마 ‘오로라공주’를 통해 복귀한 임성한 작가(53·사진) 얘기다. ‘보고 또 보고’ ‘인어아가씨’ ‘하늘이시여’ ‘신기생뎐’ 등 숱한 인기작을 내 김수현 이후 최고의 히트 작가로 불리는 그는 늘 자극적인 설정과 대사로 ‘막장 드라마’ 논란에 휩싸여 왔다.
신작 ‘오로라공주’는 재벌가의 딸 오로라와 베스트셀러 작가 황마마의 로맨스를 다룬다. 줄거리만으로는 여느 드라마와 다를 것 없어 보이지만 2주 남짓한 방영 기간에 이 드라마는 불륜에 대한 수위 높은 대화, 애견의 사주를 보러 간다는 에피소드, 황마마의 세 누나가 밤마다 남동생 침대에 모여 주문을 외우는 장면으로 인해 적지 않은 논란을 낳았다.
현재 10% 안팎의 시청률을 기록 중인 이 드라마는 동시간대 SBS ‘못난이 주의보’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경쟁 중이다. 그럼에도 해당 방송사와 제작진은 느긋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임성한 드라마가 과거에도 10% 안팎의 시청률로 시작했다가 대박을 터뜨린 경우가 적지 않았다는 ‘믿음’ 때문이다.
한때 50%까지 치솟았던 임성한 드라마의 최고 시청률은 2007∼2008년 ‘아현동 마님’ 이후 20%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못해도 20%대 시청률을 담보한다는 믿음이 임성한 드라마의 진짜 생존비결이다.
임성한 드라마는 일정한 패턴을 반복해왔다. 대학에서 전산학을 전공한 때문인지 수많은 데이터베이스(소재)를 자신이 세운 일정한 규칙에 따라 재조합해 드라마를 만든다는 인상을 준다. 예컨대 다섯 글자 제목, 신인급 주연배우, 출생의 비밀이나 치정관계·겹사돈의 복잡한 인물관계, 잦은 상상 장면과 귀신 들림, 아리영 단사랑 오로라 같은 특이한 등장인물의 이름은 대표적인 ‘임성한표 규칙’이다. ‘동어반복의 막장 드라마’라는 꼬리표가 붙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이처럼 도식적 유사성과 별개로 작품 속 등장인물과 에피소드에 대한 설정은 나름 치밀하다는 게 방송 관계자들의 공통된 평이다. 배한천 MBC C&I 드라마제작부장은 “흥행공식을 따르면서도 작품 속 등장인물이나 에피소드의 층위가 두텁다”고 평했다.
젊은 남녀 주인공 못지않게 부모 세대 이야기를 비중 있게 다루는 것도 특징이다. 한 방송 관계자는 “임성한표 드라마에서는 주연보다 나이든 조연이 갖는 흡인력이 크다. 일일드라마 시청률을 주도하는 중장년층의 취향을 철저히 반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비현실적 에피소드와 캐릭터를 통해 시청자들이 느끼는 현실에 대한 억압과 불만에 대리복수를 해주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윤석진 충남대 국문과 교수는 “여타의 드라마가 판타지를 만드는 데 주력한다면 임 작가의 드라마는 가부장이나 가진 자에 대한 조롱이 많고 이에 시청자가 묘한 쾌감을 얻는 것 같다”고 말했다.
최지희 고려대 언론학과 박사과정생은 올해 초 발표한 ‘신기생뎐’ 수용자 연구에서 “드라마 속 에피소드에서 자신이 실제 겪은 일과 유사점을 찾으며 공감하고 즐거워하는 시청자가 많았다”며 “사람들이 막장 드라마 속에서 나름의 리얼리티를 느끼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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