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자 파이낸셜타임스에 ‘어떻게 하면 아베 신조가 노벨평화상을 받을 수 있을까’라는 제목의 칼럼이 실렸다. 순전히 제목에 끌려 끝까지 읽어봤다. 공동 필자인 미국 해군분석센터의 제임스 클래드 선임고문과 애틀랜틱 카운슬의 로버트 매닝 연구원은 “일본이 독도를 한국에 양보하면 1977년 이집트 무함마드 안와르 사다트의 이스라엘 방문이나 1972년 리처드 닉슨의 중국 방문에 필적하는 선의의 행동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은 독도를 양보하면 일본에 대한 한국인의 생각이 바뀌고 아베는 유력한 노벨평화상 수상 후보자가 될 것이라고 했다.
우리 땅인 독도를 놓고 일본의 양보를 거론하는 것도 어이없지만 설사 일본 총리가 독도 영유권 주장을 포기한다고 해도 한국 땅을 한국 소유로 인정하는 행위에 불과한데 노벨평화상 운운하니 황당하기 짝이 없다. 독도 문제의 본질을 모르는 외국인의 무책임한 주장과 황당한 글을 실어준 외국 신문의 경박함 때문에 화가 치밀었다.
아베는 노벨평화상 수상을 꿈도 꾸지 말아야 하지만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후보자가 될 수도 있는 지도자다. 그가 의지를 갖고 적극적으로 나서면 아시아의 가장 큰 불안 요인인 북한 핵을 포기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시진핑의 등장 이후 북-중 관계가 변하고 있다. 중국은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중국 내 북한은행 계좌를 폐쇄하는 등 독자적인 대북(對北) 제재를 단행했다. 한미가 유례없이 똘똘 뭉쳐 강경하게 대응하는 마당에 중국까지 달라지자 북한은 몸이 달았다. 김정은은 중국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지난달 한미 정상회담 직후 최룡해를 특사로 보냈으나 시진핑은 세 차례나 비핵화를 강조하며 북한을 머쓱하게 만들었다. 북한이 미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남북대화를 수락한 것도 초조함의 산물이다. 북한으로선 미중 정상이 북핵 불용(不容)을 철석같이 합의하는 것을 앉아서 지켜볼 수만은 없었을 것이다.
시진핑은 미국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중동 분쟁에도 개입하기 시작했다. 중국은 지난달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을 동시에 초청했다. 이-팔 지도자의 베이징 회동이 성사되지는 않았지만 중동 평화를 위한 중재자 역할을 자임하고 나선 것이다. 중국이 별다른 연고가 없는 이-팔 분쟁에 개입하자 미국에서는 주요 2개국(G2)의 일원으로 본격적인 세계질서 재편 전략을 가동한 것 아닌가 하는 분석까지 나온다.
중국의 중동사태 중재는 낯설어 보이지만 북한 문제 개입은 모두가 환영한다.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은 4월 한중일 순방 때 “중국은 북한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유일한 국가”라고 거듭 강조했다. 북한의 대화 수락은 한미중 정상의 결속을 막으려는 김 빼기 전략일 수도 있다. 그렇다 해도 중국의 압력에 북한이 움찔한 것은 분명하다. 시진핑이 도발→대화→보상의 악순환을 반드시 끊겠다고 결심하면 북한의 변화 가능성은 더욱 커진다.
오늘과 내일 캘리포니아 주 서니랜즈에서 회동하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국가주석은 영향력 1, 2위를 다투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지도자들이다. 오바마는 이미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중국 지도자가 북핵 같은 난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면 얼마든지 노벨평화상을 받을 만한 업적을 만들어낼 수 있다.
시진핑에게는 북-중 정상회담 카드가 있다. 북한의 핵 포기와 정상회담을 연계하면 김정은에게 상당한 압력이 될 것이다. 중국 지도자가 만나주지 않으면 김정은은 세계로부터 버림받은 외톨이 신세를 감수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김정은의 권력기반도 위험해진다. 시진핑이 북한을 정상 국가로 이끌고 핵을 포기하게 만들면 마오쩌둥과 덩샤오핑을 넘어서는 세계적 지도자의 영예까지 누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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