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방영 중인 ‘하늘을 나는 홍보실’은 일본 항공자위대를 전면에 내세운 드라마다. 줄거리는 이렇다. 방송국 여기자 이나바(아라가키 유이)는 과격한 취재로 말썽을 일으킨 뒤 좌천돼 생활정보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 그는 ‘일하는 제복 시리즈’라는 코너의 취재를 위해 항공자위대 홍보실을 찾는다. 거기서 만난 소라이(아야노 고)는 교통사고로 전투기 파일럿의 꿈을 잃고 무기력하게 홍보실 근무를 하고 있는 자위대원. 뼈저린 실패를 겪은 청춘 남녀 사이엔 당연히 호감이 싹트기 시작한다.
제복 사랑이 세계 으뜸인 일본이지만 제복의 결정체, 자위대가 드라마에 나온 사례는 드물다. 2006년 방영된 ‘전국 자위대’ 정도가 생각나는데, 그나마도 자위대가 비밀 훈련 중 시간 여행을 해 일본 전국시대에 떨어진다는 판타지물에 가까웠다.
‘하늘을 나는…’에 나오는 ‘지금 현재’의 자위대, 그리고 그에 대한 묘사는 어쩔 수 없이 타국 시청자의 눈길을 끌 수밖에 없다. 우리에겐 일제강점기 당시의 일본군과 동일시될 수밖에 없는 그 자위대를, 일본 드라마에서 어떻게 그리는지 말이다.
드라마는 항공자위대가 무조건 옳다고 두둔하지는 않는다. 드라마 첫 회, 이나바 기자는 이렇게 말한다. “난 무기나 총 같은 폭력적인 영화가 제일 싫어.” “군대를 못 갖는다고 자위대라니, 그런 궤변이 어디 있어.” “어차피 전투기는 사람을 죽이기 위한 기계잖아요.”
하지만 드라마는 홍보실 직원들의 입을 빌려 반박한다. “우리는 국가를 지키기 위해서만 존재합니다.” “사람을 죽이고 싶다는 생각은 단 한번도 한 적 없습니다.” 그리고 결정적 대사. “자위관도 사람이니까요.”
드라마 첫 회에 몇 번이나 반복되는 ‘자위관도 사람’이라는 대사는 이 드라마를 관통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드라마는 자위관이라는 이유로 약혼자의 부모가 결혼을 반대하고, 자위관이라는 이유로 여성이기를 포기해야 하는 대원들의 삶을 보여 준다. 사실 타국의 시청자 시각에선 ‘자위대는 궤변’이라는 이나바의 발언이 진실에 가깝다. ‘자위’를 가장한 사실상의 군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위관도 사람’이라는 대사는 이런 현실에 슬그머니 눈을 감도록 유도한다.
그리하여 이런 꺼림칙한 해석이 가능하다. 이 드라마는 자위대에 관해 잘 모르고 전쟁이나 폭력에 대해 막연한 거부감만 갖고 있던 한 무지한 여성이 항공자위대 홍보실을 통해 자위대가 좋은 것이라고 ‘계몽 당하는’ 얘기라고.
뒷맛이 더욱 꺼림칙해질 상상을 해 보자. 최근 수년간 일본에선 막부시대 말기를 배경으로 한 ‘료마전’, 러-일전쟁을 다룬 ‘언덕 위의 구름’이 방영됐고, 역시 막부 말기를 다룬 ‘야에의 벚꽃’이 방영 중이다. 모두 일본의 침략 야욕이 본격화하던 시기를 다룬 드라마다. 일본이 드라마를 통해 과거에 대한 재해석에서 멈추지 않는 거라면?
상상은 현실과 교차한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구조 활동 이후 일본에선 자위대의 인기가 하늘을 찌른다고 한다. 만약 아베 신조 정권의 평화헌법 개정 시도가 현실화된다면 항공자위대 홍보실은 ‘국가를 지키기 위해서만 존재한다’는 궁색한 변명을 하는 대신 당당히 자신들을 군대라 부를 수 있게 될 거다.
‘하늘을 나는…’은 일본의 핫한 스타들을 등장시켜 10%대의 꽤 괜찮은 시청률을 올리고 있다. 이유야 뭐가 됐든 10%가 넘는 일본 시청자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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