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 기획/어린이집, 왜 이 지경 됐나]<상> 죄의식 없는 원장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6월 11일 03시 00분


쓰레기 시래깃국 먹여놓고 “투자금 뽑았을뿐” 뻔뻔한 항변

5일 서울 송파구 석촌동 S어린이집에서 만난 원장 정모 씨(49·여)는 인터뷰 내내 언성을 높였다. 정 원장은 3년간 정부 보조금 7억3000만 원을 횡령한 혐의로 최근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 그는 “빚내 가며 내 돈으로 차린 어린이집을 알뜰히 운영하는 게 왜 죄가 되느냐”며 억울해했다. 의사 표현을 못하는 영유아들에게 ‘쓰레기 시래깃국’을 먹였다는 비판에 대해서도 “발품을 팔아 재료값을 아낀 것”이라고 표현했다. 민간 어린이집 원장 경력 20년차인 그가 나랏돈을 호주머니에 넣고도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 불량 급식 어린이집의 손익계산서

매월 초가 되면 정 원장의 어린이집 통장에는 5330만 원이 입금된다. 이 중 4400만 원은 정부로부터 받은 지원금이다. 보육교사 인건비 1900만 원과 원생 80명의 보육료, 교재 교구비 등을 합친 액수다. 거기다 학부모들에게 특별활동비 명목으로 걷은 930만 원이 추가돼 어린이집의 한 달 수입으로 잡힌다.

현 규정대로라면 이 5330만 원은 어린이집 운영 목적으로만 써야 한다. 원장이 자기 몫으로 가져갈 수 있는 돈은 월급으로 책정된 200여만 원뿐이다. 문제는 정 원장이 ‘어린이집에 거액을 투자했기 때문에 200만 원 월급만으론 만족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데서 시작된다.

정 원장은 2007년 S어린이집 건물을 사기 위해 5억3000만 원을 대출받았고 강동구에 또 다른 어린이집을 개원하면서 추가로 10억 원의 담보대출을 받았다. 한 달 이자로 370만 원이 드니 그 이상 수익을 남겨야만 어린이집 운영이 가능하다는 게 정 원장의 주장이다. 서울시는 그런 상황에 대비해 영유아 보육료의 10%를 기타운영비로 추가 지원하지만 정 원장은 “돈 들어갈 데가 많아 그걸론 부족하다”고 했다. 정 원장은 이어 “지난달에는 스프링클러를 설치하고 건물 고치는 데 6400만 원이 들어갔는데 정부에서 수리비로 지원되는 돈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정 원장은 이런 사정을 강조하며 지출을 줄이기 위해 애를 썼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수법은 이렇다. 우선 식자재비 장부 조작. 식재료 업체를 꼬드겨 가격을 부풀린 허위 계산서를 만드는 방법이다. 정부에는 식자재비로 420만 원이 들었다고 신고하고 실제론 200만 원만 지출해 차액인 220만 원을 가로챘다. 아이들 1인당 하루 식단비로 1745원을 쓰도록 지정돼 있는데 정 원장은 절반가량만 쓴 셈이다. 정 원장은 배추 집하장에 버려진 시래기를 급식에 쓴 것에 대해 “시장을 돌며 싼 재료 고른 게 무슨 잘못이냐”고 했다.

정 원장은 또 남편을 보육교사 명단에 올리는 등의 방법으로 보조금 200만 원을 받아 냈다. 교재교구비 10만 원은 다른 어린이집에 있던 교구를 들고 와 사진만 찍어 청구했다.

음악 미술 등 외부 강사를 초빙하는 데 들어가는 특별활동비는 정 원장이 마음 놓고 수익을 남길 수 있는 ‘노다지’다. 특별활동비로 원생 1인당 15만 원 이상 받을 수 없다는 상한선만 있을 뿐 다른 규제가 없는 탓이다. S어린이집은 학부모들에게 특별활동비로 1인당 평균 11만 원가량을 내라고 요구했다. 총 930만 원이 들게 된다는 게 산출 근거였다. 하지만 실제로 특별활동에 들어간 비용은 550만 원에 불과했다. 정 원장은 이런 식으로 월급과 별도로 한 달에 무려 900여만 원의 추가 수익을 남겼다.

서울 강남에서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전모 원장(53·여)도 식자재 업체에 매월 870만 원을 입금한 뒤 실거래액인 310만 원을 제하고 나머지 금액을 친구의 통장으로 돌려받는 등 6억4000만 원을 빼돌렸다. 전 씨는 취재팀에 “우리가 자선사업으로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것도 아니고 같은 돈을 다른 데 투자했다면 훨씬 이득을 많이 볼 수 있었다”며 “상당수 원장들끼리 정부 몰래 수익을 내기 위해 ‘가짜 계약서’를 잘 만들어 주는 업체들을 공유한다”고 전했다.

어린이집 원장들이 정부 지원금을 이런 식으로 빼돌리는데도 관계당국은 ‘눈뜬 봉사’처럼 방치해 왔다. 송파구 측은 “민간 어린이집의 감사는 서류로 진행돼 제보 없이는 불법을 적발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정 원장이 운영하는 어린이집은 2009년 서울시가 선정하는 모범 보육시설인 ‘서울형 어린이집’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운영상의 문제가 일부 드러나 3차례 시정명령이 내려졌지만 정 원장은 2011년 지금의 S어린이집으로 이름만 바꾼 뒤 계속 지위를 유지하며 서울시 지원을 받고 있다. 서울시는 “행정처분을 받지 않는 이상 ‘서울형 어린이집’ 지정을 철회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 “안 걸릴 어린이집 없다”

충격적인 사실은 정부지원금과 학부모가 낸 돈을 빼돌리는 사례가 관계당국의 감독에 걸리지 않은 민간 어린이집들에서도 만연해 있다는 점이다. 동아일보 취재팀이 2일부터 3일 동안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서울 경기 지역 민간 어린이집 10곳의 원장 10명을 인터뷰한 결과 전원이 “학부모로부터 특별활동비를 실제 비용보다 더 받거나 식자재비 등 정부지원금을 아껴 어린이집 운영비로 쓴 적이 있다”고 답했다. 이들은 “특별활동비까지 문제 삼으면 안 걸릴 어린이집이 없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 원장들은 ‘불가피한 변칙회계’라는 표현을 쓰며 횡령을 정당화하려 했다. 민간 어린이집은 국공립과 달리 시설 개보수 비용이나 융자 이자 등 추가 지출 요인이 많은데 수입은 국공립과 비슷해 적자 운영을 피하려 임의로 돌려 막기를 한다는 것이다. 서울의 한 어린이집 원장은 “거래처가 발급해야 할 영수증 포맷을 내 컴퓨터에 아예 저장해놓고 필요한 만큼 영수증을 자체 발급하는 방식 등을 이용해 비용을 실제보다 부풀려 당국에 신고한다”고 말했다.

민간 어린이집의 특별활동비 과다 징수 등에 대해서는 감독 공무원들도 인지하고 있지만 대개는 묵인해 준다는 게 어린이집 관계자들의 주장이다. 경기 남양주시에서 민간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이모 씨는 “우리가 보육료 인상을 주장할 때마다 담당 공무원들이 ‘특별활동비로 남기시잖아요’라며 눈감아주다가 요즘 어린이집에 대한 여론이 안 좋아지니 우리를 범죄자 취급해 황당할 뿐”이라고 말했다. 막대한 국민 세금으로 지원을 받아 안정적인 수입을 보장받고 있는 민간 어린이집 원장들이 이처럼 온갖 편법과 불법을 자행하는 대가를 학부모들과 국민 모두가 고스란히 떠안고 있는 게 현실이다.

곽도영·서동일·신광영 기자 no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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