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8일 마산에서 열린 NC와 삼성의 프로야구 경기. 구심을 맡은 최규순 심판원의 판정을 두고 삼성의 인터넷 팬 카페가 부글부글 끌었다. 일명 ‘최규순의 야구교실 사건’ 때문이었다.
NC가 2-0으로 앞선 8회초 1사 2, 3루에 삼성 우동균이 타석에 들어섰다. NC 더그아웃에서는 1루를 채우는 고의4구 작전을 지시했다. 문제는 포수 이태원의 동작이었다. 이태원은 투수 찰리가 세트 포지션을 취하고 있는 상태에서 이미 홈플레이트 바깥쪽으로 빠져나와 포구 자세를 취했다. 그러자 최 구심은 ‘타임’을 외치며 이태원을 포수박스로 복귀시켰다.
야구 규칙(8.05)에 따르면 포수 이태원의 동작은 명백한 보크였다. ‘고의4구를 진행 중인 투수가 포수석 밖에 나가 있는 포수에게 투구하였을 경우’ 보크라고 명시돼 있다. 구두경고를 줬음에도 이태원이 또다시 포수박스를 벗어나자 최 구심은 아예 포수 등을 움켜쥐었다. 우동균이 볼넷을 얻어 출루하자 최 구심은 이태원에게 보크 규정을 설명했다.
이 장면을 지켜본 삼성팬들은 분통이 터졌다. 최 심판이 규정대로 보크 판정을 내렸다면 3루 주자가 진루해 홈을 밟아 득점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연장 12회 끝에 7-4로 삼성이 이기긴 했지만 삼성팬들은 “중요한 승부처에서 최 구심이 NC를 위해 보크 강의를 했다. 이건 오심이 아니라 승부조작이다”라며 그를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최 심판은 다음 날 야구계 최고의 ‘악당’으로 떠올랐다. 언론들도 그의 행동이 판정의 신뢰도를 떨어뜨렸다고 지적했다.
자, 이제 악당의 이야기를 들어볼 차례다.
최 심판은 “야구 규칙상으로는 보크를 주는 게 맞다. 하지만 모든 룰을 있는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실제 규칙에는 포수 보크가 있지만 지금껏 고의4구 때 보크가 선언된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렇다면 그냥 넘어가도 될 일을 최 구심은 왜 경기에 ‘개입’했을까.
“쪽팔려서 그랬지…. 포수 이태원이 아예 규칙을 모르는 것처럼 보였거든. 그건 알고서 그냥 넘어가는 것과는 달라. 아무리 신인이라지만 프로경기에서 고의4구도 할 줄 모른다는 건 웃기는 일이잖아. 솔직히 말해 더그아웃에 있는 감독과 코치가 반성해야 할 일이야.”
악당들의 말 못할 슬픔
심판들은 찰나의 순간, 애매한 상황에 올바른 판정을 내려야 한다. 명백하게 편이 나뉜 스포츠에서 심판은 어떤 판정을 내려도 어느 편에게는 미움을 받기 마련이다. 그래서 미국의 야구전문가 레너드 코펫은 자신의 저서 ‘야구란 무엇인가’에서 심판원에 대한 챕터를 ‘자, 이제 ‘악당’을 등장시킬 차례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했다. 최근 가장 ‘핫’한 악당인 최 심판은 이렇게 하소연했다.
“정말 서글픈 게 뭔 줄 알아? 이유야 어찌됐든 우리는 욕을 먹게 돼 있다는 거야. 진 팀한테나 진 팬들한테나. 심판이 잘한 판정은 누구도 칭찬해주지 않아. 그런데 오심은 기가 막히게 지적하는 거야. 구장에 있는 슈퍼카메라도 오심 건수를 잡으려고 설치된 느낌이라니까.”
심판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첫 오심을 또렷이 기억한다고 한다. 최 심판이 1군 무대에 올라와 저지른 역사적인 첫 오심을 들어보자. 알만한 선수들이 조연으로 등장한다.
“1993년도 초여름 삼성과 롯데의 더블헤더였어. 처음으로 1군 경기에 심판으로 나와서 긴장을 엄청 했지. 2루심이었는데 생생하게 기억이나. 당시 삼성 투수 성준(현 SK 투수코치)이 1루 견제를 했는데 1루 주자였던 롯데 전준호(현 NC 주루코치)가 거기에 걸려들었지. 그래서 2루로 냅다 뛰었는데 2루수였던 류중일(현 삼성 감독)이 송구를 받아 태그하는 시늉만 한 거야. 사실 못했는데 류중일의 할리우드 액션에 그만 속아 넘어간 거지. 지금 생각해도 분통이 터져.”
그 결과 최 심판은 곧바로 2군으로 강등됐다. 이 오심 하나로 그해 아예 1군 무대를 밟지 못한 것이다.
심판들은 공에 집중하기 위해 모든 감각을 총동원한다. 시속 150km를 넘나드는 강속구, 이리저리 휘는 변화구가 3차원 스트라이크존을 통과하는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시력은 물론이고 공간지각력도 뛰어나야 한다. 구심은 포수 뒤에 서서 서너 시간 동안 100개 이상의 투구를 지켜봐야 하기 때문에 집중력은 필수다.
소리도 절대 놓쳐서는 안 된다. 방망이가 공에 스쳤는지, 헛돌았는지는 미세한 소리로 판단한다. 특히 주자가 1루를 밟을 때, 공이 글러브에 박히는 ‘퍽’ 하는 소리에 1루심의 청각과 시각이 복합적으로 반응한다. 하지만 팬들은 심판의 판정이 아닌 선수의 플레이에 갈채를 보낸다. 그라운드 위의 주연은 심판이 아니기 때문이다.
피할 수도 없다… 단장(斷腸)의 고통
“야구판에서 우스갯소리로 오가는 얘기가 하나 있어. 뭔 줄 알아? ‘감독이 싼 똥과 심판이 싼 똥은 지나가는 똥개도 안 먹는다’는 거야. 그만큼 닳고 닳아서 영양가가 없다는 거지.”
실제로 야구심판 대부분은 설사를 한다고 한다. 오심을 하면 안 된다는 심리적인 압박감. 시즌 내내 출장이 이어지고 저녁 경기가 끝나면 심판들은 으레 술판을 벌인다. 선수가 아니라서 제재하는 사람도 없다. 스트레스를 풀자는 목적이지만 불규칙한 생활에 술과 담배까지 더해지니 설사가 안 나올 리 없다. 심판들은 경기 중에 험한 꼴을 당하지 않으려 대개 상비약을 가방에 가지고 다닌다.
하지만 상비약으로는 피할 수 없는 고통이 있다. 최 심판은 이를 “창자를 끊는 아픔”이라고 표현했다. 바로 공에 맞는 아픔이다. 지난해 5월 최 심판은 한화의 마무리투수 바티스타의 강속구에 마스크를 정통으로 얻어맞았다. 포수와 사인이 맞지 않았던 것. 포수가 속구를 주문했는데 변화구가 나오면 잡을 수 있지만 변화구를 기다리는데 속구가 나오면 속수무책이다. 속수무책의 공에 포수 뒤에 있는 구심이 당한 것이다. 당시 해설을 맡았던 허구연 MBC 해설위원은 대기심으로 교체될 거라 했지만 최 심판은 5분 후 다시 구심으로 나섰다. 모든 심판은 “공에 맞아 부러지지 않는 한 참고 경기에 나서라”고 교육받는다.
프로야구 구심은 시속 150km에 육박하는 강속구에 맞는 경우가 허다하다. 5kg이 넘는 보호장구를 착용하고 있지만 그 아픔은 상상을 초월한다. 시속 150km의 투구를 직접 맞을 경우 순간 압력은 무려 80t. 아파트 3층에서 떨어뜨린 2kg짜리 벽돌을 정면으로 맞는 정도의 충격이다. 투구나 파울타구가 보호장구에 맞으면 다행이지만 쇄골이나 팔뚝에 맞으면 대부분 뼈에 금이 가거나 부러진다.
“공에 맞지 않는 법은 간단해. 타석에 우타자가 섰으면 슬그머니 그 뒤에 서면 되거든. 그런데 생각해봐. 그러면 공을 정확히 볼 수 없는데 어떻게 좋은 심판이 될 수 있겠나?”
감당해야 할 판정의 무게
프로야구 문승훈 심판은 퇴장 판정과 인연이 깊다. 그는 4월 5일 두산과 LG의 경기에서 삼진 아웃을 당한 뒤 볼 판정에 항의하며 자신을 밀친 두산 홍성흔을 퇴장시켰다. 지난해에 이어 시즌 1호 퇴장 명령은 그의 손에서 나왔다.
“남들은 내가 쉽게 퇴장을 명령하는 줄 알지만 전혀. 그 뒤로 어떤 일이 벌어진 줄 알면 절대로 그런 소리 못할걸?”
문 심판에게 1999년 4월 30일은 잊을 수 없는 날이다. 그가 프로야구 사상 최초로 6명을 퇴장시킨 바로 그날이다. 상황은 이랬다. 잠실에서 열린 LG와 해태의 경기에서 6회말 LG 데톨라가 해태 투수 곽현희의 공에 맞고 1루로 출루했다. 다음 타자 이종열도 왼쪽 무릎에 공을 맞았지만 포수 최해식은 이종열이 스윙을 했다며 강광회 3루심한테 판정을 요구했다. 3루심은 이종열의 방망이가 돌아가지 않았다고 판정했다. 최해식은 헬멧을 집어던지며 불만을 표시했고 당시 구심이었던 문 심판은 그에게 퇴장을 명령했다.
그러자 김응용 해태 감독(현 한화 감독)과 코치진이 뛰쳐나와 거칠게 항의하며 심판들과 몸싸움을 벌였다. 문 심판은 김 감독을 비롯해 장채근(현 홍익대 감독), 김성한(현 한화 수석코치) 등 5명을 추가로 퇴장시켰다. 문 심판은 김응용 감독 밑에서 김성한 코치와 함께 동고동락하며 선수생활을 한 적도 있었지만 그래서 더 가차 없었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어떻게 전화번호를 알았는지 집으로 협박전화가 걸려오는 거야. 나는 괜찮지만 ‘죽여버리겠다’며 집사람까지 협박하는데 듣고 흘려버릴 수가 없더라고. 아내는 전화 받는 것도, 밖에 나가는 것도 꺼렸어. 그때 처음으로 심판이 된 걸 후회했어.”
프로농구 사상 초유의 몰수패라는 판정의 무게는 얼마나 무거웠을까. 2003년 12월 20일 SBS와 KCC의 경기에서 부심을 봤던 홍기환 심판은 당시 심판 판정에 항의하던 정덕화 감독에게 두 번째 테크니컬 파울을 줘 퇴장시켰다. 이에 이상범 코치가 항의하며 선수들을 코트에 내보내지 않자 박웅렬 주심은 SBS의 몰수패를 선언했다.
다음 날 한국농구연맹(KBL) 김영기 총재를 비롯한 집행부가 총사퇴했다. 이상범 코치와 홍기환 심판은 3시즌 자격 정지라는 최고 징계를 받았다. 매년 계약을 갱신하는 심판들에게 1시즌 이상 자격 정지는 ‘사형 선고’나 다름없었다. 홍 심판은 “그땐 너무 억울해서 며칠간 잠도 오지 않았고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며 “다시 똑같은 상황이 벌어지고 그 결과를 알고 있다고 해도 똑같은 판정을 내릴 것”이라고 말했다.
“심판이라는 게 한 발은 늘 절벽 위 허공에 떠 있는 상태야. 심판으로 복직하기 전에 여차하면 언제든 경제적으로 독립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어. 그래서 택시회사에 들어갔어. 3년 하면 개인택시 자격이 나오니까 자격정지 기간하고도 딱 맞았지.”
홍 심판은 불행인지 다행인지 개인택시 자격을 갖추지 못했다. 당시 정상이 참작돼 심판 자격 정지가 2004년 10월 10일까지로 단축됐기 때문이다.
이번 시즌 프로농구 심판상을 받은 장준혁 심판도 2003∼2004시즌 LG와 오리온스의 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뼈아픈 오심으로 2년 자격 정지를 받은 적이 있다. 아내는 2년간 실업자가 된 마당에 심판을 그만두라며 장 심판을 말렸다.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던 그는 달팽이관 이상으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했다. 하지만 그는 다시 심판이라는 악당 가면을 썼다. 군대시절에 심판 강습을 받기 위해 청원휴가까지 나왔던 그가 농구와의 인연을 끊을 수는 없었다.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하고, 설사를 달고 살고, 공에 맞아 깨지고, 열혈팬들에게 협박을 받고, 자격 정지로 생계의 위협을 느끼면서도 왜 악당을 그만두지 못할까. 미국 메이저리그 내셔널리그 심판이었던 빌 클렘이 남긴 일화를 보면 조금은 감을 잡을 수 있다. 선수가 물었다. “이거, 어떻게 된 거예요? 세이프예요, 아웃이에요?” 그러자 클렘이 이렇게 쏘아 붙였다. “내가 판정할 때까지는 아무것도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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