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공 최강희, 체면 구겼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6월 19일 03시 00분


코멘트

[한국축구 월드컵 8회 연속 진출]
대표팀 ‘대타 사령탑’ 맡아 본선 이끌었지만 비판 쇄도

“모든 것이 내 탓이오.”

최강희 감독(54·사진)이 축구 국가대표팀 사령탑에 오른 뒤 가장 많이 한 말이다. 그를 보좌한 대한축구협회 관계자는 “브라질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을 치르면서 최 감독님은 비판을 많이 받았다. 그러나 그는 언제나 문제점을 자신에게서 찾으려고 했다. 부진한 경기로 인해 선수와 코칭스태프들이 낙담해 있을 때도 그는 ‘내 탓’이라며 선수들을 가장 먼저 위로했다”고 말했다. 최 감독은 모든 비판을 홀로 감수하려 했다.

최 감독은 2011년 12월 경질된 조광래 감독에 이어 갑작스레 대표팀 사령탑에 올랐다. “프로팀에서 지지고 볶고 사는 게 체질”이라며 수차례 대표팀 감독직을 거부했던 그는 위기에 빠진 한국 축구를 돕기 위해 결국 대표팀 감독 수락이라는 용단을 내렸다. 그러나 그는 “내 임기는 최종예선까지”라며 ‘시한부 감독’을 자처했다. 시간적 여유를 갖고 선수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닥공(닥치고 공격) 축구’를 만들어냈던 프로축구 전북 현대에서와 달리 단기간에 좋은 성적을 내야 하는 대표팀이 자신과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해 5월 본보 인터뷰에서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그는 불길한 미래를 예감한 듯 “최종예선이 끝날 때까지 웃을 일이 별로 없을 것 같다”며 씁쓸해했다.

약 18개월간 대표팀을 지휘하면서 최 감독은 많은 상처를 입었다. 최종예선 초반 한국이 2연승을 달릴 때만 해도 최 감독에 대한 평가는 칭찬 일색이었다. 그러나 이후 거듭된 대표팀의 부진 속에 최 감독을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은 차갑게 변했다. ‘최 감독이 이동국(전북)만 편애한다’, ‘단조로운 전술로 한국 축구를 퇴보시켰다’는 비난이 끊이지 않았다. 대표팀이 답답한 공격과 느슨한 조직력으로 최종예선에서 고전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최 감독이 해결하기 힘든 구조적 문제도 있었다. 한준희 KBS 해설위원은 “가장 큰 문제는 한국 축구의 전체적인 전술적 기조가 없는 상태에서 감독만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갑자기 대표팀을 맡은 최 감독에게는 자신만의 전술을 살릴 시간이 부족했다”고 말했다.

27년째 유지하고 있는 ‘2 대 8 가르마’에서 엿볼 수 있듯 최 감독은 자신에 대한 믿음이 확고하고 고집도 세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지기 싫다’는 이유로 당구장에서 살다시피 해 8개월 만에 당구 300점을 쳤을 정도로 승부욕도 강하다. 그의 지인들은 “우여곡절 속에서 최 감독이 중심을 잃지 않고 임무를 완수한 것은 ‘고집스러운 뚝심과 승부욕’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수원 삼성에서 최 감독과 함께 코치 생활을 한 박항서 상주 상무 감독은 “최 감독을 지켜보면서 마음이 아파 전화통화와 휴대전화 문자로 응원을 해준 적이 있다. 그러나 최 감독은 힘든 내색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나도 고집이 세기로 유명하지만 최 감독과 의견이 충돌할 때는 이기기 힘들다”는 그는 “최 감독의 고집은 보통이 아니다. 하지만 거기서 나오는 뚝심과 자신감이 있기 때문에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위험 부담이 큰 자리를 꼭 가야겠느냐”며 최 감독의 대표팀행을 만류했던 이철근 전북 단장도 “최 감독이 힘들어한 적도 있지만 ‘목표한 것은 어떻게든 해낸다’는 각오를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제 최 감독은 다시 한 번 자신에게 ‘맞는 옷’을 입으려 한다. 그는 최종예선을 마친 뒤 전북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울산=정윤철 기자 trigger@donga.com
#최강희 감독#사령탑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