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사형폐지 운동의 ‘아이콘’이었던 미국 최연소 사형수가 27년 만에 감옥 문을 나섰다. 피해자 가족의 ‘위대한 용서’가 출소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미국의 여자 사형수 폴라 쿠퍼 씨(43·사진)가 17일 오전 10시 인디애나 주 록빌 교도소를 나와 자유의 몸이 되었다고 미 언론이 이날 일제히 전했다.
쿠퍼 씨는 15세였던 1985년 마리화나를 피우고 술을 마신 상태에서 여자친구 3명과 함께 성경학교 교사였던 78세 할머니 루스 펠케 씨의 집에 “성경을 배우고 싶다”고 말한 뒤 들어가 끔찍한 범행을 저질렀다. 가슴과 배 등 온몸을 33차례나 칼로 찔렀다. 쿠퍼 씨가 범행으로 손에 쥔 돈은 고작 10달러였다. 쿠퍼 씨는 이듬해 7월 사형 선고를 받아 미 역사상 가장 어린 사형수가 되었다.
잔혹한 범행이었지만 20세도 안된 소녀에게 사형 선고가 내려진 것은 가혹하다는 여론이 인권단체와 사형반대론자들 사이에 일면서 국제적인 구명운동이 시작됐다. 당시 범행에 가담한 다른 3명이 25∼60년 형을 선고 받았지만 흑인인 쿠퍼 씨만 사형이 선고돼 인종차별 논란도 있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1987년 직접 주지사에게 감형을 호소했으며 이듬해 성당 신부 등 200만 명이 청원서를 인디애나 주 대법원에 제출했다. 무엇보다 피해자의 손자인 빌 펠케 씨가 구명운동에 나선 것이 결정적이었다. 그는 “할머니라면 쿠퍼 씨에게 사랑과 용서를 베풀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할머니를 위해 그를 살려줄 것을 기도했다”고 CNN에 밝혔다.
결국 1988년 인디애나 주 대법원은 60년 형으로 감형했다. 쿠퍼 씨는 교도소에서 23차례나 말썽을 피울 만큼 문제아였지만 교회를 열심히 다니고 학사학위를 딸 정도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다. 그는 생명의 은인인 빌 씨의 면회 신청을 8년이나 거부했지만 끝내 마음을 열고 지금은 매주 e메일을 주고받는 친한 사이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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