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시장이 ‘버냉키 쇼크’에 출렁이면서 국내 금융소비자들도 후폭풍에 휩싸였다. 주가는 물론이고 채권 값과 원화가치가 유례없는 ‘트리플 약세’를 보이면서 투자처를 찾지 못한 ‘갈 곳 잃은’ 부동자금이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시중금리가 요동치고 대출금리가 오르면서 빚 가진 사람들의 부담이 더 커질 개연성도 높아졌다. 내집빈곤층(하우스푸어)의 가계부채가 악화되면 부동산 시장의 침체가 더 깊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금융 전문가들은 “미국의 양적완화 출구전략 가시화로 국내 투자자들의 재테크 전략도 수정이 불가피해졌다”면서 “단기적으로는 현금을 확보하고 보수적으로 투자에 접근하는 동시에 부채 규모부터 줄이라”고 조언했다.
○ “대출금리 오를 듯, 빚부터 줄여라”
출구전략의 여파로 국내 금융시장에 유입됐던 외국인 자금이 빠져나가는 ‘머니 무브’(자금 이동)가 가속화하면서 국내 증시 및 채권시장은 당분간 침체를 이어갈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 20일 국내 증시에서 이탈한 외국인 자금만 4745억 원. 외국인투자가들은 이달 7일부터 10거래일 연속 모두 4조3781억 원어치의 국내 주식을 팔아치우며 하락세를 이끌었다.
이영곤 하나대투증권 투자정보팀장은 “출구전략을 선제적으로 반영해 유동성 장세를 즐기던 외국계 자금이 대거 빠져나가면서 증시가 충격을 받고 있다”면서 “당분간 이런 자금이 더 유출돼 코스피는 1,900 선 밑을 맴돌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불확실성이 사라졌다는 점에서 충격이 길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조윤남 대신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상반기 증시가 타격을 받은 것은 미국 경기회복에 대한 실체를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양적완화 축소를 결정한 것은 경제회복에 대한 자신감을 보여준 신호인 만큼 하반기 증시가 반등할 여지가 크다”고 해석했다.
채권시장은 외국인 자금 이탈로 채권가격 하락(금리는 상승)이 불가피해졌다. 홍정혜 신영증권 연구원은 “7, 8월 채권가격이 많이 내린 뒤 약세 국면이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채권금리 상승은 대출자들의 부담으로 직결된다. 최근 출구전략 우려로 국고채 금리가 급등하면서 이에 연동된 적격대출(장기 고정금리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이미 오르기 시작했다. 우리은행의 10년 만기 적격대출 금리는 지난달 9일 연 3.75%에서 현재 연 4.17%로 급등했다. 신한은행, 하나은행의 적격대출 금리도 한 달 새 0.4%포인트 뛰었다.
이정걸 KB국민은행 WM사업부 재테크팀장은 “금리 상승폭이 크지 않더라도 그동안 저금리 상황에서 많은 빚을 진 가계는 금리가 약간만 올라도 부담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대출을 갈아타거나 새로 대출을 받으려고 한다면 변동금리보다는 고정금리를 선택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은행연합회 관계자는 “시장금리가 현 추세대로 계속 오른다면 변동금리형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더 오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 “상승장 대비해 현금 확보하라”
양적완화로 신흥국에 풀렸던 돈이 다시 미국으로 흡수되면 신흥국 통화의 약세 및 달러 강세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형수 외환은행 자금시장본부장은 “환율 움직임은 양면성이 있어 기업이나 금융회사에는 어느 한쪽이 불리하다고 잘라 말하기 어렵지만 개인은 상황에 따라 큰 손실을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국내 투자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던 신흥국 채권 투자는 채권가격 하락에 투자국의 통화가치 하락까지 겹쳐 이중 손실을 볼 가능성이 커졌다. 정원기 하나은행 강남PB센터장은 “유학생을 둔 가정은 미리 달러를 확보해야 나중에 환손실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영곤 하나대투 팀장은 “출구전략 여파로 모든 자산시장이 유례없는 하락세에 빠져 있다”며 “앞으로 방향성을 예측하기가 쉽지 않다”고 우려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개인투자자들에게 투자 방향을 제시하는 프라이빗뱅커(PB)들도 “시장 변동성이 축소되기 전까지 움직이지 않는 게 좋다”며 “당분간 지켜보라”는 조언을 많이 하고 있다. 서재연 KDB대우증권 PB는 “지금 같은 때는 어느 쪽에 투자하기보다는 기다리는 게 가장 좋다”며 “시장 변동성이 커진 만큼 원금을 지킬 수 있는 ‘절대수익 추구형’ 상품이나 ‘원금보장형 상품’이 투자 트렌드로 자리 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원기 하나은행 센터장은 “일반 투자자는 채권, 주식시장이 다시 상승할 때를 대비해 현금을 확보해두는 게 중요하다”며 “틈새투자 상품을 찾는다면 주가가 떨어져도 수익을 보장해주는 주가연계증권(ELS)을 눈여겨보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신흥국을 빠져나간 자금이 흘러들어갈 미국 등 선진국 시장이 새로운 투자처로 부상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조혜진 삼성증권 SNI 차장은 “미국 경기회복으로 금리가 오르면 채권시장 자금도 증시로 흘러들어갈 것”이라며 “미국 증시의 상승 여력은 충분하다”고 내다봤다. 다만 정유진 우리투자증권 골드넛WMC 부장은 “미국으로 돈이 돌아가는 건 확실하지만 버냉키 의장이 이미 ‘자산 버블’에 대한 우려를 표명한 만큼 신중하게 투자에 나서는 게 좋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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