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 버냉키 쇼크는 최근 급격히 흔들리고 있는 ‘아베노믹스’에도 적지 않은 충격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아베노믹스는 대규모 양적 완화를 통해 경기를 부양하겠다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경제정책으로 그가 높은 지지를 받고 있는 원동력이다.
20일 일본 닛케이평균주가는 전날에 비해 1.74%(230.64엔) 하락하는 데 그쳐 다른 아시아 증시에 비해 일단 선방했다. 오전 한때 2.10%가량 떨어지며 12,000엔대로 내려갔지만 엔화 가치가 떨어지면서 하락 폭이 축소됐다. 양적 완화 축소로 인한 미국의 장기금리 상승이 점쳐지자 외환시장에서 달러를 사들이는 손길이 바빠졌다. 이날 도쿄 외환시장에서 엔화 가치는 전날보다 1.68% 떨어진 달러당 98.08엔으로 마감했다.
하지만 아베노믹스에 대한 우려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날 닛케이평균주가는 구로다 하루히코(黑田東彦) 일본은행 총재가 4월 4일 대규모 양적 완화를 발표한 후 정점을 찍었던 지난달 22일에 비해 2,612.68엔 떨어졌다. ‘구로다 완화’ 효과를 80% 까먹은 것이다. 버냉키 쇼크 본격화로 주가가 추가로 떨어지면 7월 참의원 선거 및 아베 총리의 우경화 정책 추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이 예상된다.
도쿄 금융가에서는 아베노믹스 자체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일본 국채와 엔화 가치의 폭락을 의미하는 ‘아베겟돈(아베+아마겟돈)’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다. 아르거스리서치의 피터 태스커 애널리스트는 20일자 파이낸셜타임스(FT)에 기고한 도쿄발 시장분석 기사에서 “투자자 일각에서는 (아베노믹스로 인한) 주가 급등과 엔화 가치 급락을 재앙의 전조로 걱정한다”며 이같이 전했다.
구로다 총재는 아베노믹스 실시 이후 처음 고개를 숙였다. 그는 19일 중의원(하원) 재무금융위원회에 출석해 “일본은행의 양적·질적 완화 의도에 대해 오해와 혼란을 초래한 점이 있다면 매우 유감으로 생각하며 반성하고 있다”고 밝혔다. 5월 22일 기자회견에서 “장기금리를 제어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자신의 발언 때문에 장기금리가 급등락한 점에 대한 사과였다.
요미우리신문 등 일본 언론은 그가 추가 금융완화에 나설 것이라고 내다봤다. 아베노믹스의 부작용에도 지금 양적 완화를 축소하면 모처럼 회복 기미를 보이는 경기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19일 발표된 각종 경제지표에서 아베노믹스는 분야별로 명암이 엇갈렸다. 5월 무역수지 적자는 9939억 엔(약 11조7159억 원)으로 11개월 연속 적자에 5월 기준으로 1979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엔화 약세로 에너지 수입가격이 치솟았기 때문이다. 반면 일본을 찾은 해외 관광객은 5월 87만 명으로 전년 동월 대비 31% 늘었다. 가계금융자산은 주가 상승에 힘입어 3월 말 1517조 엔으로 전년 대비 3.6%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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