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경제위기의 상처가 채 아물지 않은 상황에서 나온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의 출구전략 카드가 글로벌 경제에 후폭풍을 불러오고 있다. 일본과 중국 유럽연합(EU)까지 시중에 돈을 푸는 양적완화 정책 속도 조절에 들어가면서 출구전략이 각국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5년 가까이 이어진 ‘돈을 풀어 경기를 살린다’는 정책이 서서히 그 끝을 향해 가고 있다.
미 연준은 지난해 9월과 12월에 걸쳐 매달 850억 달러(약 98조 원)의 주택담보대출(모기지) 증권과 미 국채를 사들여 돈을 풀고 실업률이 6.5% 이하로 떨어질 때까지 무기한 제로금리 수준을 유지하겠다는 3차 양적완화 정책을 발표했다. 1, 2차 양적완화 때와 달리 시한을 정하지 않고 매입 규모도 커졌다. 저금리를 바탕으로 한 위험한 머니게임은 계속됐다. 세계 기축통화인 달러는 양적완화 조치로만 3조 달러가 풀렸다. 일부는 실물경제로 흘러들었지만 상당 금액은 수익을 좇아 증시와 신흥국으로 몰렸다. 이 덕분에 뉴욕증시의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는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고 신흥국들은 밀려드는 달러를 주체하지 못했다. 브라질은 올 들어 달러 유입을 막기 위한 조치까지 잇달아 발표했다.
하지만 한쪽 방향으로 쏠림이 크면 방향을 전환할 때의 충격도 배가되는 것이 진리다. 올 들어 미 경제지표가 회복세를 보이자 시장은 ‘경기가 좋아지니 양적완화를 종료하는 출구전략 카드를 언제 빼들까’라는 불안에 빠지기 시작했다. 버냉키 의장이 5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가 끝난 뒤 “채권 매입 규모를 줄이는 조치를 취할 수 있다”며 원론적인 언급을 하자 최근 한 달 동안 국제금융시장이 출렁였다. 자금이 빠져나간 신흥국의 통화가치는 떨어졌다. 저금리시대의 종언을 예상한 투자자들이 채권시장에서 발을 빼면서 시중금리는 완연한 상승세로 전환했다. 잠깐의 제스처에도 국제금융시장이 출렁였는데 출구전략 일정을 공식화한 마당에 그 충격은 더할 수밖에 없다. 연준 발표 이후 국제 금융시장의 패닉이 이를 그대로 입증하고 있다.
시장의 반응은 엇갈리고 있다. “긴축이 너무 극단적이고 시장에 지장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우려가 지배적이지만 “어차피 터질 악재를 준비할 시간을 벌었다”는 반응도 나온다. 니코시큐리티의 니시 히로이치 씨는 AFP통신에 “양적완화 종료 가능성에 대한 투명성이 확보된 만큼 이제 투자전략을 세울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미 연준은 미 경제 회복을 이번 출구전략 일정 제시의 근거로 들었다. 부동산 시장은 완연한 봄으로 접어들었고 한때 8% 중반을 웃돌던 실업률도 5월 7.6%까지 떨어졌다. 이날 연준은 경제전망보고서에서 내년 성장률 전망치를 종전 2.9∼3.4%에서 3.0∼3.5%로 상향조정했다.
하지만 연준의 이번 결정은 글로벌 경제 여파를 도외시한 결정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유로존 재정위기가 해결되지 않고 중국 경제마저 어려운 상황이어서 미국의 출구전략은 세계경제의 침체를 다시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와 이언 브레머 유라시아그룹 대표는 최근 공동 기고문에서 “연준의 출구전략은 전 세계 경제에 미칠 수 있는 위험을 간과하고 있다”고 주장했다고 CNBC는 최근 전했다.
일본중앙은행은 12일 정례 금융통화정책회의에서 더이상 부양책이 없다는 메시지를 보냈고 중국도 ‘돈줄 죄기’에 나서 양적완화 조치는 힘을 잃어가고 있다. 중국 중앙은행인 런민(人民)은행은 해외자금 유입을 통제하고 그림자금융(shadow banking)의 추가 확대를 막기 위해 은행의 외환 매입 한도를 제한하며 위안화 공급도 자제하고 있다. 유럽중앙은행(ECB)도 6일 통화정책회의에서 기준금리를 현행 0.5%로 동결했다. 미국에 이어 다른 주요국도 출구로 서서히 다가서면서 글로벌 경제는 시계(視界) 제로의 시간을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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