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식당 착한 이야기]조미료-첨가물 안먹으니 병이 싹… 그래, 천연짬뽕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6월 22일 03시 00분


충남 천안시 중국음식점 ‘티엔란’

‘중국 음식은 조미료 맛’이라는 말들을 한다. 하지만 중식당 ‘티엔란’은 화학 첨가물과 조미료, 유전자변형농산물을 쓰지 않고도 사람들이 줄서서 먹을 만큼 맛있는 중국 음식을 만들어낸다. 왼쪽부터 김상배 경남 혜영 씨 남매, 그리고 혜영 씨의 남편 원웅재 씨. 천안=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중국 음식은 조미료 맛’이라는 말들을 한다. 하지만 중식당 ‘티엔란’은 화학 첨가물과 조미료, 유전자변형농산물을 쓰지 않고도 사람들이 줄서서 먹을 만큼 맛있는 중국 음식을 만들어낸다. 왼쪽부터 김상배 경남 혜영 씨 남매, 그리고 혜영 씨의 남편 원웅재 씨. 천안=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몸이 많이 아팠다. 갑자기 체온이 오르락내리락했다. 맥박은 빨라지고 숨이 찼다. 병원에서 갑상샘(갑상선) 기능항진증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치료도 받고 약도 먹어봤지만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김경남 씨(46·여)는 음식에서 답을 찾고 싶었다. 즉석식품은 아예 없앴다. 화학조미료나 화학첨가물이 들어 있는 음식은 최대한 식탁에서 뺐다. 야채도 기름에 볶기보다는 살짝 삶아서 무쳤다. 버섯가루는 주방의 필수품이 됐다.

지난해 11월 30일 방영된 채널A ‘이영돈 PD의 먹거리 X파일’에서 22번째 ‘착한 식당’으로 선정된 충남 천안시 불당동 중화요리 전문점 ‘티엔란’이 탄생한 배경이다. ‘티엔란’은 ‘천연(天然)’의 중국어 발음. 말 그대로 자연식재료를 사용하는 중화요리점이다.

1일 오후 5시 손님을 가장해 티엔란을 찾았다. 깔끔한 테이블과 내부 인테리어가 중식당이라기보다는 레스토랑 같았다. 저녁을 먹기엔 이른 시간임에도 14개 테이블 가운데 4개가 차 있었다. ‘자연으로 만든 중화요리 티엔란’이라는 간판과 천년초, 유기농 미네랄설탕의 효능을 알리는 문구가 곳곳에 부착돼 있었다. 이 집에서 사용하는 식재료다.

“한 사람인데도 주문은 받지요?” “그럼요. 어서 오세요.”

짬뽕 한 그릇을 주문했다. 여느 중식당이라면 발색제를 쓴 노란 단무지와 양파, 시커먼 색깔의 춘장부터 내왔을 터다. 하지만 이 집 단무지와 춘장은 진갈색이다. 식탐이 사라지는 느낌이다.

‘검증하러 왔으니 나중에 물어보면 될 일….’

이어 등장한 짬뽕. 명색이 중식조리기능사 자격증을 딴 기자다. 제대로 맛을 보자. 젓가락으로 한 번 ‘휙’ 휘저은 뒤 무엇이 들어갔는지 확인해봤다. 날씨 탓인지 홍합 대신 동죽(조개류)을 사용했다. 보통 짬뽕처럼 오징어와 양배추 양파 부추도 눈에 띈다. 새끼주꾸미와 새송이 버섯을 사용한 것이 좀 다르다고 할까. 하지만 대수로운 것은 아니다.

이제는 시식 차례. 우리 밀을 사용한다는 소문을 들은 터라 면발의 식감은 약간 거칠 것이라고 예상했다. 허나 “생각보다 괜찮네”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그동안 먹어 본 우리 밀 면 중에선 비교적 졸깃한 편이다.

이어 오징어를 넣고 씹어봤다. 흐물흐물한 다른 집 해물과 달리 탱글탱글한 식감이다. 신선하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아삭아삭한 양배추, 텁텁하지 않고 개운한 육수, 짜지 않고 고소한 춘장의 맛…. 이날 이후 기자는 2차례 더 티엔란을 방문했다.

기자의 신분을 밝히고 취재에 나선 것은 그 후로도 보름이 지나서였다. 티엔란을 운영하는 사람은 모두 4명. 주인 경남 씨를 비롯해 홀은 여동생 혜영 씨(39)가, 주방은 혜영 씨 남편인 원웅재 씨(38)와 경남 씨 막냇동생인 상배 씨(36)가 맡는다. 가족경영인 셈이다.

우리 밀 특유의 향이 살아있는 자장면, 멸치 무 다시마 동죽 등을 우려 만든 짬뽕, 겉은 바삭하지만 고기는 육즙이 나올 만큼 부드러운 꽃탕수육, 직접 담근 단무지(왼쪽부터).
우리 밀 특유의 향이 살아있는 자장면, 멸치 무 다시마 동죽 등을 우려 만든 짬뽕, 겉은 바삭하지만 고기는 육즙이 나올 만큼 부드러운 꽃탕수육, 직접 담근 단무지(왼쪽부터).
취재의 초점은 이 집에서 자랑하는 ‘3무(三無)’, 즉 무(無)화학첨가물, 무(無)화학조미료, 무(無)유전자변형농산물(GMO)에 맞춰졌다. 대답은 간단했다. “몸이 아파 첨가물 등 3가지를 안 먹었더니 몸이 좋아졌어요. 다른 사람들에게도 적극 권장하고 싶었죠. 사업적으로도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식당주인과 손님 간 ‘상생 전략’인 셈이다.

4남매 중 맏이인 경남 씨는 어렸을 때부터 동생들을 보살펴야 했다. 형편이 넉넉지 못해 새벽부터 일터로 나간 부모 대신 동생들 끼니를 모두 챙겼다. 그런데 열 살 차이 나는 막냇동생인 상배 씨는 유독 부엌에 관심이 많았다. 부엌으로 와 이것저것 도왔다. 참기름과 깨소금, 약간의 소금만 넣은 주먹밥에 오이와 당근을 잘게 썰어 넣고, 계란말이 위에 밥알을 얹어 돌돌 말아 건넨 적도 있다.

세월이 흘러 4남매가 뿔뿔이 흩어졌다. 상배 씨는 아니나 다를까 2000년부터 식당에 취업해 평소의 꿈을 실현하고 있었다.

충남 천안시에 식당을 차리게 된 것은 6년째 남 밑에서 식당일을 하는 상배 씨를 위한 길이기도 했다. 우유 배달과 공장 일, 네일아트 등으로 억척스럽게 돈을 모은 경남 씨도 식당을 내고 싶었다.

몸이 아파 천연재료만으로 식단을 짜 왔던 경남 씨. 그는 지난해 2월 상배 씨가 자신이 일했던 중식당을 그만두자 “나랑 함께 식당을 내자”고 전격 제안했다. 마침 상배 씨도 화학조미료를 사용하지 않는 중식당에서 일했던 터라 자신의 경험을 살려 새로운 메뉴를 짤 수 있다고 자신했다. 티엔란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조미료 등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음식을 만드는 게 정말 힘들다는 것을 알았어요. 가족이야 입맛에 익숙해져 괜찮지만 식당 손님들한테 ‘맛없는 것’을 강요하기는 어려운 일이죠.”

남매는 물러서는 대신 몇 발짝 더 나아가기로 했다. 먼저 우리 밀만을 사용하기로 했다. 충남 천안시 풍세면에서 우리 밀을 재배하는 ‘천안우리밀영농조합’을 찾았다. 수입 밀보다 3배가량 비쌌지만 주저하지 않았다. 가까운 곳에서 생산되는 것이니 로컬 푸드(local food)이기도 했다. 면을 졸깃하게 하기 위해 사용하는 첨가물을 거부하고, 반죽할 때 유기농 천년초 가루를 넣어 하루 종일 숙성시켰다.

정제 설탕 대신 유기농사탕수수에서 추출한 수수원당을 선택했다. 캐러멜 색소가 들어 있지 않고 우리 콩과 밀로 만든 춘장, 순수 양조간장, 현미유 등만을 사용하기로 했다.

경남 씨는 “몸에 해롭지 않은 것만을 구입하는 일 자체도 힘들었다”며 “첨가물을 적게 사용한 것이 결국에는 몸에도 좋다는 것을 (손님들이) 깨닫게 해주고 싶어 열심히 발품을 팔았다”고 말했다.

문제는 맛이었다. 몸에 아무리 좋은들 맛이 없다면 외면받기 때문이다. 해답은 제품의 신선도에 있었다. 친구 어머니가 농사지은 고춧가루, 전남 여수 아는 집에서만 구하는 멸치, 부산 기장의 다시마, 선상에서 잡자마자 냉동한 오징어….

나름의 조리법도 터득했다. ‘멸치는 많은 양을 사용하되 살짝 끓여야 육수가 텁텁하지 않다’, ‘여름에는 상하기 쉬운 홍합 대신 동죽을 사용한다’….

경남 씨와 여동생 혜영 씨가 식당 개업을 위해 인테리어 공사를 하는 동안 상배 씨는 주방에서 수차례 실험을 거듭했다. 그리고 지난해 8월 티엔란이라는 간판으로 주택가 한쪽 골목에 식당 문을 열었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였다.

건강한 중국음식을 판다는 명분도 좋지만 식당운영은 가족의 생계가 걸린 문제였다. 그것도 경남, 혜영, 상배 씨 3남매 가정의 생계가 달린….

마침 개업 당시는 ‘이영돈 PD의 먹거리 X파일’의 방송으로 화학조미료 유해성 논쟁이 한창이었다. 이게 경남 씨 가족에게 호재가 될 줄은 몰랐단다. ‘3무’ 중식당이라는 입소문이 나면서 손님들이 하나둘 찾아왔다. 젊은층은 자신의 블로그에 글을 올렸다. 그리고 채널A 먹거리 X파일 팀이 불쑥 찾아오고 그해 11월 전파를 탔다. 이후부터 식당 골목길은 주차대란을 겪기 시작했고, 주말과 휴일엔 번호표를 받기 위해 늘어선 줄이 날로 길어졌다.

30대 부부는 항암치료를 받던 여섯 살배기 아들을 데려와 “아이가 자장면을 무척 먹고 싶어 한다. 그러나 다른 곳에서는 불안해서 먹일 수가 없다”고 했다. 부부는 자장면 한 그릇을 싹 비운 아이를 보면서 눈물을 흘렸다. 경남 씨는 화장실에서, 상배 씨는 주방에서 눈가를 훔쳤다. “돈보다 더 소중한 게 있구나 생각했죠.”

질투와 시기 때문에 힘든 일도 있었다. 주방을 맡고 있는 상배 씨가 한 중국집에서 10개월 일하면서 배운 ‘No MSG’ 자장면의 기술도용 논란으로 인터넷이 뜨겁게 달아오르기도 했다. 견디기 힘든 상황이었다.

이런 논란에 대해 기자는 굳이 상배 씨의 설명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티엔란 메뉴에 답이 나와 있기 때문이다. 메뉴 뒷면에는 식재료 구입처와 재료를 사용하는 방법 등이 자세하게 적혀 있다.

“아무나 적어 가도 상관없어요. 스마트폰으로 찍어 가도 마찬가지죠. 건강한 먹을거리를 많은 사람들이 먹고 건강해질 수 있다면 좋은 일 아닌가요. 만드는 법도 가르쳐드리는걸요. 하지만 분점을 내거나 식당을 확장하는 것은 생각도 안 해봤어요. 이 정도면 충분하거든요.”

요즘에는 사탕수수원당을 카운터 입구에 비치해 판매한다. 많은 사람들이 정제설탕을 먹지 않길 희망해서다. 사탕수수원당의 판매 수익금 전액은 결식아동을 돕는 데 쓴다.

천안=이기진 기자 doyoce@donga.com
#중국음식#티엔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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