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꼼수’ 멤버였던 정봉주 전 민주당 의원이 올 3월 경북 봉화로 내려갔다. 그는 2007년 대선 때 BBK 의혹 관련 허위 사실을 유포한 죄로 1년 징역형을 산 뒤 작년 12월 만기 출소했다. 피선거권이 박탈돼 사면·복권이 안 되면 10년간 선출직에 나설 수 없다. 그는 최근 한 인터넷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왜 봉화로 귀촌했는지를 자세히 설명했다. 요약하면 “진보도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가 전업 농부로 나선 건 아니다.
내 관심을 끈 건 그의 구상이다. 이달 말경 ‘봉봉’이라는 이름의 협동조합 설립을 앞두고 있는 그는 “20만 미권스(정봉주와 미래권력들) 회원도 있고 도시 쪽 네트워크도 강하다. 이걸 활용해서 좋은 농산물의 직거래를 통해 도시와 농촌이 상생하는 모델을 만들어 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여기까진 좋다. 그 다음이 개운치 않다. “협동조합 조합원들이 1만, 10만, 100만이 된다고 치면 이들만큼 강력한 조직이 어디 있겠나. 민주당도 협동조합에 주목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보수 쪽 분들은 협동보다 경쟁의 원리를 중시하기 때문에 협동조합에 적응하기 힘들 거다.”
그는 지난달 ‘노무현 서거 4주기 추모문화제’에서는 더 노골적으로 말했다. “시민을 씨줄과 날줄로 만들라는 협동조합이 곧 노 전 대통령의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인데 가카(이명박 대통령)께서 아무것도 모르고 작년 12월 (협동조합기본법을) 통과시켰다. 봉화에 협동조합을 만들었다. 배후조종은 박원순 시장이다. 저번에 식사하는데 협동조합을 하라고 하더라. 이미 다 약속됐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올해 2월 “앞으로 10년 동안 협동조합 수를 8000개로 확대하겠다”며 다양한 지원책을 담은 서울시 협동조합 활성화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일각에서 내년 지방선거를 위한 포석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자 박 시장은 그제 “협동조합의 원리를 몰라서 하는 말”이라고 반박했다. 협동조합은 누군가(5인 이상)가 필요에 따라, 자발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아무리 서울시장이라고 해도 자기 마음대로 만들고 키울 수는 없다. 그런데 ‘8000개’ 운운했으니 박 시장 본인이 협동조합 설립을 주도하겠다는 뜻으로 들릴 수밖에 없다.
협동조합을 정치적 시각으로 바라보고, 그것도 박 시장의 ‘배후조종’에 따라 협동조합을 만들게 됐다는 정 전 의원과, ‘정치적 의도가 없다’는 박 시장 중 누구 말이 맞는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가 없다. 적어도 정 전 의원은 협동조합을 왜 만들고, 어떤 식으로 쓰려는지는 분명히 한 셈이다.
미리부터 협동조합을 선거와 연관시키는 것은 기우(杞憂)일지 모르겠다. 협동조합기본법(9조)은 협동조합의 공직선거 관여를 금지하고 있다. 국회의원과 지방의원은 협동조합 임원이 될 수 없도록 하는 법 개정도 입법 예고돼 있다. 그러나 선거법이 없어 불법선거운동이 벌어지는 건 아니다. 더구나 협동조합기본법(10조)은 국가 및 공공단체가 협동조합 사업에 적극 협조하고 필요한 자금을 지원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칼을 의사가 잡을지, 도둑이 잡을지 모르니 걱정인 것이다.
협동조합은 사회경제적 약자들이 연대를 통해 자조·자립하기 위한 작은 생활공동체다. 정 전 의원의 말마따나 보수우파보다는 진보좌파와 궁합이 더 잘 맞는다. 그러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보듯 진보좌파가 협동조합에서 재미를 보면 보수우파라고 가만히 있을 리 없다. 그렇게 되면 작은 생활공동체도, 큰 사회공동체도 흙탕물을 뒤집어쓰게 된다.
5월 말 현재 벌써 1210개의 각종 협동조합이 등장했다. 협동조합이 우리 사회에 진짜 필요하고 소중하다고 여긴다면 불순한 촉수(觸手)는 거둬야 한다. 정치는 정치의 영역에서 하는 것만으로도 차고 넘친다. 그것도 박수조차 못 받는 정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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