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수서동 수서 나들목(수서IC) 동부간선도로 진입로는 법도, 질서도 없는 ‘분통 터지는’ 도로입니다.”
독자의 e메일 제보를 받고 현장에 갔다. 독자의 울분이 한 치의 과장도 없었다. 기자의 차량 앞으로 연이어 다른 차들이 끼어드는 모습을 지켜보자니 취재에 앞서 화가 치밀어 오를 정도였다. 진입로에 들어서기 위해 차들이 수서역 방면으로 길게 줄을 서 있는데 일부 운전자는 진입로 끝부분까지 내달리다 주저 없이 끼어들었다.
이 진입로는 강남 송파 일대에서 올림픽대로와 강변북로로 진입하는 주요 통로다. 밤고개로와 탄천교를 지나 수서 나들목으로 진입하면 동부간선도로를 통해 올림픽대로와 강변북로로 진입할 수 있다. 편리한 구간인 만큼 끼어들기도 극심하다.
18일 오후 6시 20분경 취재팀은 수서역에서 출발해 밤고개로∼수서 나들목∼동부간선도로 진입을 시도했다. 퇴근시간인 만큼 인근 진입로에서 800m 떨어진 진입차로부터 차량이 밀렸다. 사람이 걷는 정도의 속도로 300m가량 가다 보니 탄천교에서 밤고개로를 이어주는 차로에서도 이 진입로로 차량이 밀려들었다.
‘안전하게 운전하자’는 생각에 기자는 앞차와 5m가량 거리를 두고 운전했다. 승용차 한 대가 방향지시등을 켜면서 곧바로 끼어들었다. 몇 초 지나지 않아 화물트럭과 택시가 동시에 기자의 차량 앞으로 끼어들기를 시도했다. 자리를 내주지 않으려 앞으로 바짝 붙어 봤지만 두 대는 접촉사고도 불사하겠다는 듯 밀고 들어왔다. 뒤쪽에서는 연이어 경적을 울리며 기자와 끼어들기 차량 모두에게 불만을 표시했다. 뒤차에서는 ‘바보같이 왜 끼어들기를 허용하느냐’는 듯 연신 상향등을 번쩍였다.
취재팀의 뒤로 5분 동안 함께 차로를 준수하던 아반떼 차량은 더는 참을 수 없었는지 차로를 박차고 옆 차로로 나와 가속 페달을 밟았다. 그러곤 70여 m 앞에서 끼어들기를 시도했다. 이 구간에는 ‘끼어들기 단속구간’이라고 적힌 노란 팻말이 두 개나 설치돼 있지만 무용지물이었다. 단속카메라는 보이지 않았다. 끼어들기를 막아주는 ‘규제봉’은 진입로 입구에 약 1m 간격으로 15개가 꽂혀 있을 뿐이었다. 취재팀이 수서역에서 수서 나들목을 통해 동부간선도로로 진입하기까지 1.4km를 지나는 데 걸린 시간은 10분 47초.
20일 같은 시간대에 인근 육교에서 현장을 취재했다. 인천공항으로 향하는 리무진버스가 의기양양하게 진입로 바로 앞에서 끼어들었다. 버스의 몸집에 기가 눌렸는지 승용차들은 별 저항도 하지 못하고 자리를 내줬다. 끼어들기 행렬은 멈추지 않았다. 마치 누가 더 요령 있게 잘 끼어드나 내기하듯 400m 남짓한 직선구간에는 7대 이상의 차량이 동시에 끼어들기를 시도하기도 했다. 10분 동안 끼어들기를 한 차량은 76대. 이곳에선 끼어들기 반칙운전이 일상적인 듯했다.
평일이면 퇴근시간대에 매일 이곳을 지난다는 김민섭 씨(33·서울 광진구)는 “올해 4월에는 참다못한 운전자가 차에서 내려 끼어들기 운전자 차를 두드리며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것도 봤다”며 “계속 끼어들기를 당하다 보면 앞 차량을 들이받고 싶은 충동까지 느낀다”고 말했다. 김성진 씨(37·회사원)는 “줄을 서는 순간부터 스트레스를 받는다. 끼어들기 안 당하려고 앞 차량에 밀착하다시피 운전하다 보니 사고가 날까 봐 걱정되기도 하고 퇴근길이 너무 고달프다”고 했다.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박천수 책임연구원은 “이렇게 끼어들기가 극심한 구간에 차로를 분리해주는 규제봉이 적게 있다는 것이 큰 문제”라며 “직선구간이 긴 만큼 차로분리대를 설치해 원천적으로 끼어들기를 방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도로를 넓히거나 단속 경찰을 온종일 배치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운 만큼 폐쇄회로(CC)TV를 통한 단속이 효과적”이라고 했다.
경찰이 20일 오후 7시에 이 구간에서 끼어들기 단속을 나서자 취재팀은 앞서 18일 10분 이상 걸리던 거리를 5분 남짓한 시간에 통과할 수 있었다.
김준일 기자 ji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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