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 버냉키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의 양적완화 축소 일정 공개의 쇼크는 우선 세계 금융계에 먼저 미치겠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충격파가 기업과 가계 부문으로 퍼져 나갈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금융당국은 혼란의 불씨가 금융에서 실물로 옮겨 붙지 않도록 여태 사용한 적 없는 다소 주관적인 잣대를 사용해 부실의 꼬리 자르기에 나섰다.
23일 금융계에 따르면 20일 ‘버냉키 쇼크’가 발생한 직후부터 국내 기업이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발행하는 회사채 금리는 21일 현재 연 3.40%로 19일보다 0.22%포인트 상승(채권가격은 하락)했다.
기업으로서는 그만큼 채권 발행비용이 높아진 것이어서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게 됐다. 실제 A사는 다음 달 회사채 발행을 위해 주간사회사 증권사 선정을 준비 중이었으나 최근 채권시장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가면서 발행시점을 미루기로 했다. 외화자금 조달도 여의치 않아 한국수출입은행은 호주에서 3억 달러 규모로 준비하던 ‘캥거루 본드’ 발행계획을 잠정 연기했다.
여유자금을 많이 쌓아둔 상장 대기업들은 이런 상황에서 당장 충격을 받을 가능성이 크지 않다. 문제는 건설 조선 해운 등 전통적인 취약업종에 속하는 기업과 금융감독원이 최근 신규 취약업종으로 분류한 철강 시멘트 석유화학 관련 기업들. 이미 은행 대출에서 외면받고 있는 이 기업들은 직접 회사채를 발행하기가 더 어려워졌다.
한국의 최대 수출 대상국인 중국의 성장률 둔화와 금융긴축 조짐은 이런 상황을 더 악화시킬 수 있다. 외국계 투자은행(IB)들은 중국의 올해 경제성장률을 7%대로 낮게 전망하고 있다. 게다가 중국 런민(人民)은행은 최근 해외자금의 지나친 유입을 막고 ‘그림자금융(shadow banking)’을 제어하기 위해 위안화 공급을 자제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중국 자체적으로도 ‘출구전략’에 시동을 건 것이다.
금감원은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숫자로 드러나는 재무적 판단만으로 내부에 숨어 있는 부실을 찾아내기 어렵다고 보고 이례적으로 ‘비(非)재무적’ 기준을 도입했다. 예를 들어 조선사의 경우 영업이익을 꽤 내고 있어도 배를 다 만들고 난 뒤 나중에 대금을 받기로 한 매출의 비중이 50% 이상이라면 글로벌 경기가 요동칠 때 충격을 고스란히 받을 수밖에 없다고 보고 신용위험평가 대상에 두는 것이다.
시중자금 규모가 급감하고 금리가 상승하면 가계도 부정적인 영향을 받는다. 특히 신용대출과 주택담보대출을 많이 받은 가계는 금리 상승분만큼이 고스란히 이자로 반영된다.
대출금리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국고채 3년물 금리는 21일 기준 연 3.04%로 5월 21일(2.60%)보다 0.44%포인트 올랐다. 4월 말 현재 변동금리 기준 가계대출 잔액(566조 원)을 감안하면 가계의 이자부담이 한 달 만에 2조5000억 원가량 늘어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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