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함과 세련미를 추구해 온 자동차와 디지털 기기 디자인에 ‘감성’ 바람이 불고 있다. 그 핵심 키워드는 바로 ‘향수’다. 자동차, 디지털 기기, 소재업체 등은 ‘옛것’을 그리워하는 현대인의 정서에 호소할 수 있는 컬러와 디자인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글로벌 화학기업인 독일의 머크가 최근 서울에서 개최한 ‘머크 컬러&트렌드 세미나 2013’과 제일모직이 이달 낸 ‘2014/15 트렌드 테마 3개의 핵심 컬러군’ 보고서를 보면 이런 업계의 고민이 잘 드러난다. 업체들은 이른바 옛것에 대한 아련한 느낌을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색상으로 따뜻한 감성을 가진 적색 계열을 꼽고 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소재의 표면도 광택 효과를 극대화한 ‘유광’ 대신 투박하고 광택이 적은 ‘저광’ 제품이 유행할 것으로 보고 있다.
○ 내년, 내후년은 ‘적색’
머크는 18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전시관에서 세미나를 열고 2014, 2015년 자동차 및 전자 기기의 컬러 트렌드가 무엇이 될지에 대한 분석 결과를 내놨다. 이날 행사에는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자동차 등의 디자이너 50여 명이 모여 큰 관심을 보였다.
강연에 나선 본사 컬러마케팅그룹의 필립 로스캄 총괄은 ‘노스탤지어(향수)’라는 단어를 수차례 반복했다. 그는 “변화가 빠르고 불확실성이 증대되는 미래에 자동차와 전자 기기의 디자인 컬러는 노스탤지어에 호소하는 경향이 더 강하게 나타날 것”이라고 진단했다.
제일모직의 보고서를 작성한 케미컬사업부 선행디자인팀은 내년과 내후년을 선도할 3가지 디자인으로 ‘드림 메커닉’(과거의 디자인을 과학적인 감성으로 재현한 디자인), ‘미스틱 사이언스’(빛처럼 만질 수 없는 비물질적인 요소들을 표현한 디자인), ‘크리에이티브 믹스’(이질적인 요소들을 창조적으로 조합한 디자인)를 제안했다. 이 중 ‘드림 메커닉’이 바로 향수와 맞닿은 개념이다. 강수경 선행디자인팀장은 “사람들은 과학기술의 지나친 발전에 대한 경계심을 갖고 있다”며 “과거를 추억할 수 있는 수공예기술, 전통 소재 등이 현대 감성과 조화를 이뤄 미래 디자인을 이끌어 나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머크와 제일모직 두 소재업체가 주목한 색상은 적색 계열이었다. 로스캄 총괄은 “따뜻하고 안정적인 느낌을 주는 적색 계열의 색상을 중심으로 일부 실험적인 컬러가 등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 팀장도 “고급스러우면서도 친숙한 느낌을 주는 ‘로즈골드’ 색상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소재의 질감 역시 화려한 ‘유광’ 대신 입자가 거칠고 광도가 낮은 ‘저광’ 제품이 유행할 것으로 전망된다”며 “지나치게 자극적인 현재의 트렌드가 역반응을 낳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 자동차는 ‘빨강’, 디지털 기기는 ‘브라운’
세부적으로는 자동차와 디지털 기기에서 유행할 색상은 조금씩 차이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로스캄 총괄은 적색 계열 중에서도 자동차는 ‘빨강’, 디지털기기는 ‘오렌지’와 ‘브라운’이 대세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자동차의 경우 빨강은 따뜻한 느낌을 주는 동시에 자동차 특유의 스피드를 강조하는 색상이다. 실제 국내 완성차 업체들은 최근 적색 계열의 차량을 잇달아 출시하며 고객들에게 부드러움과 강인한 이미지를 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지난달 출시한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뉴 투싼ix’에 ‘레밍턴 레드’ 컬러를 적용했다. ‘맥스크루즈’와 ‘싼타페DM’에도 적색 계열의 ‘레드 멜롯’ 컬러를 접목시켜 시선을 끌고 있다. 현대·기아차 남양연구소의 장수진 책임연구원은 “이미 자동차시장을 장악한 그레이, 실버 외에도 최근 들어 부드러운 느낌을 주는 빨강 등 클래식 컬러에 대한 소비자의 관심이 늘고 있다”며 “부드러운 컬러에 메탈 느낌이 나는 안료를 접목시켜 부드러운 동시에 거친 느낌을 살리려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디지털 기기의 경우 제품 가격대와 평균 수명을 고려했을 때 상대적으로 색상의 선택 폭이 넓은 편이다. 차강희 LG전자 HE디자인연구소장은 “전자 기기의 복잡한 기능을 간단하게 사용하는 기술이 중요해지면서 제품 디자인 또한 점점 더 간결해지고 있다”며 “터치 기능이 중요한 전자 기기의 특성상 시각, 촉각을 모두 만족시키는 디자인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강 팀장은 “색상만으로는 제품 차별화가 힘들다”며 “같은 브라운이더라도 나무의 느낌을 좀 더 생생히 전달하는 패턴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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