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010년 대표팀이 광저우 아시아경기를 준비하던 2009년 말. 남해에서 훈련하던 중 A 선수가 팀 분위기를 흐리는 행동을 자주 했다. 홍명보 감독은 국내 팀과의 평가전 멤버에서 A 선수를 뺐다. 이후 일본과의 공식 평가전 때도 A 선수는 선발에서 빠졌다. 일본에 1-2로 졌지만 홍 감독에게는 팀워크가 더 중요했다. A 선수는 팀 분위기를 망쳐 선수들로부터 사실상 ‘왕따’였다. 홍 감독은 이후 한동안 A 선수를 뽑지 않았고, A 선수는 “대표팀 분위기를 흐리지 않고 팀을 위해 뛰겠다”는 약속을 한 뒤에야 대표팀에 합류했다.
#2. 2009년 이집트에서 열린 20세 이하 청소년 월드컵을 준비하던 때. 파주 NFC(축구대표팀트레이닝센터)에서 홍 감독은 한 선수가 식당 아주머니에게 인사를 하지 않고 지나가자 바로 불러 세워서 불호령을 내렸다. 홍 감독은 “대표팀의 경기력을 위해 노력하는 분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잊으면 태극마크를 달 자격이 없다”고 말했다. 그때부터 홍 감독과 함께한 선수들은 식당 아주머니와 잔디 관리인, 경비원들에게 정중하게 인사하고 지낸다. 국제대회를 나갈 때 NFC 직원 전체가 나와 손을 흔들며 환송해 주는 팀은 ‘홍명보호’밖에 없다.
#3. “제가 2NE1을 어떻게 알겠어요. 하지만 2009년 세계 청소년 월드컵을 앞두고 선수들과 친해지기 위해서 최신 노래를 외웠어요. 지나가다 노래 듣고 있는 선수들에게 ‘이 이거 그 노래 아냐’라고 물으면 ‘감독님이 이런 노래도 알아요?’라는 답이 돌아와요. 그러면서 낄낄거리며 좋아하더라고요.”(2011년 8월 16일자 동아일보 인터뷰)
24일 2014년 브라질 월드컵 대표팀 신임 사령탑으로 선임된 홍명보 감독(44)은 ‘선수이기 전에 사람이 먼저’를 강조한다. ‘하나를 위한 모두, 모두를 위한 하나(All for One, One for All)’를 강조한다. 팀워크로 녹아나지 않는 선수는 절대 뽑지 않는다.
그래서 선수들에게 홍 감독의 말은 곧 법이다. 하지만 상명하복의 어쩔 수 없이 따라야 하는 명령이 아닌 믿음에 기초한 ‘신뢰의 법’이다. 홍 감독은 선수들과 하나 되기 위해 ‘소통’을 강조한다. 불거진 광대뼈에 표정 없는 과묵한 얼굴. 강력한 카리스마의 홍 감독은 사실 가슴이 따뜻한 ‘큰형님’이다. 선수들이 골을 넣으면 주저 없이 그에게 달려가는 이유다. 그는 선수들과 소통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허정무 조광래 최강희 감독 이후 ‘월드컵 태극 전사’를 이끌 홍 감독은 한국 축구의 새 시대를 열어줄 ‘준비된 감독’이다. 허정무 축구협회 부회장은 24일 홍 감독의 선임을 발표하며 “이젠 한국 축구도 새로운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 언제까지 외국인에게 기댈 것인가. 잘 준비해온 홍 감독에게 맡기고 잘 지원해 한국 축구의 미래를 키워 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허 부회장은 “외국인 감독은 결국 단발성으로 끝날 것”이라며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고 밝혔다.
홍 감독은 1990년 이탈리아, 1994년 미국, 1998년 프랑스, 2002년 한일 월드컵까지 4회 연속 선수로 뛰었다. 2002년엔 ‘4강 신화’의 주역이었다. 2002년 거스 히딩크 감독 밑에서 선수로 배웠고, 2006년 독일 월드컵 때 ‘작은 장군’ 딕 아드보카트 감독, 2007년 아시안컵 때 핌 베어벡 감독 등 명장들 밑에서 코치로 세계 축구의 노하우를 익혔다. 이후 감독으로 2009년 세계 청소년 월드컵 8강, 2010년 광저우 아시아경기 동메달, 2012년 런던 올림픽 동메달을 획득하며 지도력을 보여줬다.
한준희 KBS 해설위원은 “한국 축구 발전을 위해 홍 감독은 최상의 카드”라고 강조했다. 홍 감독이 2009년부터 키워온 속칭 ‘홍명보의 아이들’로 대변되는 황금세대를 가장 잘 이끌 지도자란 평가다.
양종구·이종석 기자 yjongk@donga.com
▼ 태극마크 달 ‘홍명보의 아이들’ 누구… ▼ U-20부터 작년 올림픽 활약한 구자철-김보경-윤석영 등 물망
“런던 올림픽 멤버 중 몇 명이 2014년에 브라질 땅을 밟게 될지 지켜봐 달라.”
홍명보 감독이 지난해 10월 고려대에서 열린 리더십 강연에서 한 말이다. 그는 자신이 키워낸 어린 선수들이 자만하지 말고 꾸준히 경기력을 유지해 국가대표로 성장하길 원했다. 2009년 20세 이하 월드컵부터 지난해 런던 올림픽까지 그가 키워온 구자철(아우크스부르크) 김보경(카디프시티) 윤석영(퀸스파크 레인저스) 등은 ‘홍명보의 아이들’로 불린다. 런던 올림픽에서 맹활약한 기성용(스완지시티) 지동원(아우크스부르크)도 범‘홍명보의 아이들’로 분류된다.
홍 감독이 국가대표팀 사령탑에 오름에 따라 그가 키워낸 선수들이 대표팀의 주축을 이룰 가능성이 커졌다. 브라질 월드컵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1년도 안 남은 상황에서 가장 확실한 카드는 신뢰할 수 있는 선수들로 팀을 꾸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홍명보의 아이들’은 오랫동안 국제대회에 함께 출전하며 손발을 맞춰 팀워크에서도 문제가 없다. 이들이 축구 인생의 절정기에 올라 있는 것도 강점이다. 김대길 KBSN 해설위원은 “올림픽 당시 23세 이하였던 선수들이 1년 뒤면 전성기로 볼 수 있는 25세 정도가 된다”고 말했다.
런던 올림픽 당시 와일드카드 논란이 일었던 공격수 박주영(셀타 비고)은 또 한 번 논란의 중심에 설 것으로 보인다. 올림픽을 앞두고 홍 감독은 병역 회피 논란이 일었던 박주영을 과감히 대표팀에 승선시켰다. 당시 홍 감독은 “박주영은 인성이 훌륭하고 나와의 소통에 문제가 없다”고 했다. 그동안 대표팀의 공격력이 도마에 올랐던 터라 홍 감독은 박주영 등 최강희 감독 체제에서 중용되지 않았던 공격수들을 선발할 가능성이 있다. 문제는 박주영의 몸 상태다. 박주영은 지난 시즌 스페인 프로축구 셀타 비고에서 좀처럼 선발로 경기에 나서지 못했고 리그에서 단 3골을 넣는 데 그쳤다. 홍 감독은 런던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대학, 프로팀 등 다양한 연령의 선수를 관찰했기 때문에 당시 축적된 자료를 토대로 새로운 공격수를 발탁할 가능성도 있다.
2011년 대표팀에서 은퇴한 박지성(퀸스파크 레인저스)의 복귀는 어렵다. 박지성 본인이 “홍 감독이 불러도 대표팀에 가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기 때문이다. 그의 빈자리는 런던 올림픽에서 주장으로 맹활약한 구자철이 맡을 것으로 보인다. 구자철은 강한 체력과 함께 홍 감독이 강조하는 ‘희생정신’을 가졌기 때문에 팀의 구심점 역할을 할 수 있다. 홍명보호는 다음 달 20일 개막하는 동아시안컵에서 첫 시험대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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