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말로 전격적이었다. 국가정보원은 새누리당 소속 국회 정보위원회 위원들에게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의 일부인 발췌록을 공개한 지 나흘 만인 24일 회의록 전문을 공개하는 파격적 조치를 취했다. 이는 더이상 야당에 끌려가서는 안 된다는 여권 내 강경론과 남북 간 비밀주의를 경계하는 박근혜 대통령의 의지, 정공법을 택한 남재준 국정원장의 뚝심 등 삼박자가 맞아떨어진 결과로 풀이된다.
20일 발췌록이 알려진 뒤 여권 내에선 전체 회의록을 공개해야 한다는 강경론이 힘을 얻었다. 내용 자체가 충격적이라는 이유에서다. 당시 여권의 핵심 관계자는 “발췌록을 본 한 인사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저자세에) ‘대국에 조공을 바치러 간 신하도 그렇게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하더라”고 전했다.
하지만 여권 내에선 신중론도 만만치 않았다. 한중 정상회담을 코앞에 두고 굳이 야당을 자극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박 대통령은 대화록 공개에 힘을 실어줬다. 그는 국정원이 대화록 공개를 전격 발표하기 1시간 반 전 이정현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을 통해 “여야가 제기한 국정원 관련 문제들에 대해 국민 앞에 의혹을 밝힐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여당이 주장하는 노 전 대통령의 서해 북방한계선(NLL) 포기 발언 의혹과 야당이 국정조사를 요구하는 국정원 댓글 사건을 동시에 털고 가자는 의미였다.
이를 논쟁거리로 남겨두면 오히려 남남갈등만 키울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또 박 대통령의 대북 정책에 대한 높은 지지율도 공개 결정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남북 간 대화가 얼마나 왜곡됐는지 알림으로써 현 정부의 대북 원칙을 돋보이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반영됐다는 얘기다.
여권의 강경론에 박 대통령의 확고한 뜻이 전달되면서 국정원의 대화록 공개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됐다. 하지만 공개 시기는 여권의 예상보다 빨랐다. 청와대에서는 이날 오전만 해도 공개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공개 방식을 두고 이견이 적지 않았다. 국정원장의 요청이 있으면 비밀 등급을 재분류할 수 있는 만큼 남 원장의 결단으로 대화록을 공개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으나 남 원장이 져야 할 정치적 부담이 너무 크다는 반론도 있었던 것.
여권에선 군인 출신인 남 원장이 영토선인 NLL 포기 발언을 묵과할 수 없었던 데다 모든 것을 공개함으로써 더이상 논쟁에 휘말리지 않는 정공법을 택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국정원은 “6년 전 남북정상회담 내용이 현 시점에서 국가안보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 것으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민주당은 국정원이 보관하고 있던 회의록도 ‘대통령기록물’로 봐야 하기 때문에 ‘열람은 불법’이라고 주장하고 있어 공개를 놓고 법정 다툼이 불가피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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