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라는 닉네임을 쓰는 누리꾼은 최근 성인 커뮤니티의 ‘훔쳐보기’ 코너에 짧은 치마를 입은 여성 7명의 사진과 함께 이런 글을 올렸다. 모두 길거리를 지나는 여성을 몰래 찍은 사진이다. 이를 본 누리꾼들은 “제 취향은 6번 처자네요” “무더위에 고생 많으십니다”라는 식의 댓글을 달며 호응했다.
이 코너에는 6월에만 1000장이 넘는 ‘몰래카메라(몰카)’ 사진이 올라왔다. 대부분 지하철 안, 계단, 술집, 화장실, 도서관, 학교, 길거리, 마트 등 누구나 쉽게 찾는 장소에서 미니스커트나 원피스 등을 입은 10∼30대 여성을 몰래 찍은 사진들이다. 여자친구나 부인, 여동생이라고 하는 사진도 자주 올라온다. 이들은 서로의 ‘작품’을 공유하며 품평까지 하는데 사진당 조회수가 1만∼5만 건에 이른다.
몰카는 별종인 성범죄자의 전유물이 아니다. 사회 지도층 인사들 가운데도 관음증을 자극하는 몰카의 ‘쾌감’에 빠지는 사례가 늘고 있다. 최근 서울의 명문 사립대 교수, 고시 3관왕 출신 국회 입법조사관, 변호사, 목사가 극장, 화장실, 헬스클럽, 지하철 등에서 여성들을 몰래 찍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평범한 사람도 호기심에 다양한 수법으로 여성을 몰래 찍는다. 서울의 한 사립대 학생인 A 씨(23)는 5월 24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지하철 역삼역 앞 버스정류장에서 스마트폰의 동영상 기능을 켠 뒤 화면 밝기를 최대한 어둡게 하고 원피스를 입은 여성의 치마 속을 찍다가 덜미를 잡혔다. 영화관 촬영기사 B 씨(41)는 5월 16일 역삼동 지하철 강남역 계단에서 카메라 촬영 소리가 나지 않는 앱을 설치한 스마트폰으로 미니스커트를 입은 여성을 찍다 체포됐다.
김재휘 중앙대 심리학과 교수는 ‘몰카 공화국’ 현상에 대해 “인간이라면 누구나 본능적으로 성적 호기심을 갖고 있지만 도덕적 가치관이 이를 통제해왔다”며 “하지만 최근 카메라 기술이 발달해 성적 호기심을 실현하기 쉬운 환경이 조성되면서 도덕의식과 성적 욕망의 균형이 쉽게 무너지고 있다. 이는 전 세계적으로 공통적인 현상”이라고 진단했다. 몰카 범죄를 전담하는 서울 강남경찰서 김용진 경장(31)은 “몰카범들은 성적 욕망을 해소하는 일탈행위를 하고 있다는 짜릿함이 일상의 스트레스를 잊게 해준다고 진술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몰카는 중독성이 강해 한번 발을 들이면 쉽게 그만두지 못한다. 도구도 갈수록 발달하고 있다. 처음엔 스마트폰을 이용하다가 휴대용 저장장치(USB메모리), 안경, 자동차 키, 시계, 텀블러 등으로 가장한 전문 소형 카메라를 이용한다. 성능에 따라 수십만 원에 이르는 몰카 도구는 인터넷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다.
호기심에 몰카를 시작한 사람도 관음증의 쾌감에 중독되면 습관적으로 신발에 USB 카메라를 묶어놓거나 손에 자동차 키 카메라를 쥐고 다니게 된다. 지난해 5, 6월 스마트폰으로 몰카를 찍은 죄로 집행유예 처분을 받았던 공익근무요원 C 씨(26)는 5월 22일 서울 강남역 일대에서 자동차 키 모양의 초소형 카메라를 손에 쥐고 여성 4명의 신체부위를 동영상으로 촬영하다가 다시 적발돼 구속됐다. C 씨는 “몰카는 담배보다 훨씬 중독성이 강하다”며 후회했지만 이미 늦었다.
몰카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지는 범죄지만 죄의식 없이 공공연히 이뤄지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몰카 적발 건수는 2010년 1134건, 2011년 1523건, 2012년 2400건으로 매해 급증하고 있다. 올해는 여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인 1∼6월에만 벌써 1569건의 몰카 범죄가 발생했다.
수많은 여성은 몰카의 대상이 될까봐 불안에 떨고 있지만 뚜렷한 대책이 없는 게 현실이다. 특히 여름철인 7, 8월은 몰카 범죄가 기승을 부리는 시기여서 여성들의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김용진 경장은 “치마를 입고 계단을 올라갈 때 손에 스마트폰이나 열쇠 등을 쥔 남성이 따라붙으면 잠시 멈춘 뒤 남성을 먼저 보내는 식으로 조심해야 한다”며 “몰카에 중독된 남성들은 여성이 가방으로 치마를 가려도 악착같이 촬영하므로 수상한 남자를 보면 경찰에 적극 신고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