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주로 밥에 뿌려 먹는 맛가루의 재료로 불량 식자재를 납품해온 업체 관계자들이 경찰에 적발됐다. 2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가 압수한 불량재료인 사료용 다시마와 채소 등을 공개했다. 뉴스1
주부 김모 씨(27)는 세 살배기 아들이 “밥 먹기 싫다”며 투정할 때마다 맛가루(일명 후리가케)를 넣어 주먹밥을 만든다. 김 씨는 “김, 시금치, 당근 등 채소가 들어 있어 영양이 풍부한 데다 맛도 좋아 엄마들 사이에선 ‘마법가루’로 불린다”고 말했다. 이 가루는 막 젖을 뗀 유아의 이유식을 만드는 데도 쓰인다.
하지만 어린이 영양 간식 재료로 알고 써왔던 맛가루 가운데 사료용 다시마와 채소로 만든 불량품이 유통되고 있다는 사실이 경찰 조사 결과 드러났다. 일부 재료에서는 담배꽁초와 도로 포장재로 쓰이는 아스팔트 콘크리트(아스콘)가 발견됐다. 육아전문사이트에는 “내 아이 먹일 음식을 쓰레기로 만들었느냐”며 분노하는 엄마들의 글이 올라오고 있다.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폐기하거나 가축사료로 써야 하는 양배추, 시금치, 브로콜리 등을 헐값에 사들여 가공·판매한 I식품업체 대표 김모 씨(54)와 이 회사에 불량 재료를 납품한 업자 등 네 명을 식품위생법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고 2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I사가 만든 재료를 받아 맛가루를 만들어 판매한 중소 식품업체 A사는 이를 전국 대형마트와 백화점에 유통시켰다.
영농조합 대표 조모 씨(54)는 상하거나 짓밟힌 양배추, 브로콜리, 상추 등을 kg당 20원에 사들여 건조시킨 뒤 김 씨에게 팔아넘겼다. 이 채소들은 건강을 해칠 우려가 있어 폐기하거나 가축사료용으로 써야 하는 것이었다. 조 씨는 이를 무시하고 2011년 1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약 3만5600kg 상당의 건조·분쇄된 채소를 김 씨에게 팔아넘겨 2억7000만 원을 챙겼다.
김 씨는 전복 양식용 사료로 쓰는 다시마도 사들였다. 통상 식용다시마는 kg당 7000원에 거래되지만 조 씨는 사료업체를 운영하는 K 씨(44)로부터 사료용 다시마를 3000원에 납품받았다. 이렇게 사들인 다시마는 약 4390kg이다.
김 씨는 2011년 1월부터 올해 4월까지 이 불량재료들을 가루로 만들어 식품업체에 팔아넘겼다. 다시마 분말 4300kg, 채소류 3만5600kg에 달하는 분량이다. 대부분은 맛가루를 만드는 중소업체 A사로 유통됐다. 나머지는 유부초밥, 면류, 선식 등을 만드는 전국 230여 개 식품제조업체에 흘러들어갔다. 김 씨는 이 같은 불법유통을 통해 약 6억2000만 원을 벌었다.
경찰에 따르면 현장 수사 당시 김 씨의 공장에는 전복 사료용 미역 2530kg과 유통기한이 지난 말린 당근 2000kg도 수북이 쌓여 있었다. 경찰은 김 씨가 판매하기 위해 보관 중이었던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조사 결과 김 씨가 유통시킨 재료에는 담배꽁초와 아스콘이 포함된 것으로 드러났다. 폐기물 처리된 채소를 헐값에 주워 별다른 위생처리 없이 담아 오는 과정에서 각종 이물질에 노출됐기 때문이다. 경찰 조사에서 I사 측은 이 같은 혐의를 인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경찰은 불량 재료로 어린이용 맛가루를 만들어 판매한 A사의 실명을 공개하지 않았다. 불량 재료를 납품받은 업체 역시 피해자라는 이유다. 6월 말 I사의 위법 사실을 경찰로부터 통보받은 포천시청은 2일까지 회수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국내 점유율 상위 3개 대형마트는 경찰이나 관할 지방자치단체로부터 불량 맛가루 제품명을 통보받지 못해 진열대에서 팔리는 제품이 불량인지 아닌지도 파악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식품관리총괄과 관계자는 “상한 채소는 세균 번식으로 인한 식중독 위험이 있고, 담배꽁초와 콘크리트는 복통 등 질병을 유발할 수 있다”며 “면역력이 약한 어린이에게 불량 식재료를 공급한 업체에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경찰은 해당 업체에서 보관 중인 사료용 미역과 유통기한이 지난 말린 당근을 전량 압수해 폐기처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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