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2일 ‘일감 몰아주기’를 규제하는 내용의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본회의에서 통과시키면서 대기업 총수 일가의 부당한 사익(私益) 편취 행위가 근절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날 국회를 통과한 법안은 총수 일가 지분이 높은 계열사에 일감을 몰아주며 부(富)를 편법으로 증식시키는 관행을 차단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또 대기업 계열사가 다른 계열사의 일감을 받아 중소기업에 하도급을 주면서 ‘통행세’만 받아 챙기는 행위도 규제할 수 있는 장치가 새로 마련됐다. 이 밖에 프랜차이즈 가맹희망자에게 본부가 예상매출액 범위를 문서로 제공토록 하고, 가맹본부에 맞설 수 있는 사업자단체의 결성을 승인하는 등 영세 자영업자들의 실질적 권한을 높여주는 법안도 이날 국회의 문턱을 통과했다.
이날 통과된 주요 법안 내용은 정부 원안보다 규제의 강도나 범위가 상당히 완화된 내용이다.
○ 전체 계열사의 10%가량만 규제
그동안 광고, 물류, 시스템통합(SI) 등 업종에서는 총수 지분이 있는 대기업 계열사들이 그룹 내 다른 계열사들이 주는 일감을 독식하면서 ‘땅 짚고 헤엄치기’ 영업을 해왔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총수 일가 지분이 100%인 현대차그룹 계열 광고회사 이노션이 2005년 설립 이후 불과 8년 만에 제일기획을 위협하는 업계 2위 회사로 성장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러나 이번에 법이 개정되면서 정부는 앞으로 대기업집단이 계열사 간의 특혜성 거래를 통해 총수 일가에 부당한 이득을 주는 행위를 차단할 수 있게 됐다. 개정안은 △정상적인 조건보다 상당히 유리한 조건의 거래 △합리적 경영판단이나 통상적 거래상대 선정 과정을 거치지 않은 거래 △직접 수행할 때 상당한 이익이 될 사업 기회를 제공하는 행위 등 3가지를 규제대상으로 명시했다. 다만, 효율성 보안성 긴급성을 위해 불가피한 내부거래는 앞으로도 계속 허용된다.
또 개정안은 대기업 계열사 간에 만연한 ‘통행세 관행’을 겨냥한 내용도 담고 있다. 이는 다른 계열사로부터 사업을 따낸 뒤 계약금의 10∼20%를 수수료로 챙기고 중소기업에 일을 맡기는 관행을 말한다. 이 밖에 개정안은 부당지원을 한 계열사뿐 아니라 이를 통해 실제 이익을 본 계열사도 처벌할 수 있게 했다.
일각에서는 이날 통과된 일감 몰아주기 규제법이 규제의 적용대상을 기존 원안보다 축소해 법의 실효성이 다소 떨어진다는 주장도 나온다. 예를 들어 부당내부거래 규제대상을 ‘총수 일가가 일정 수준 이상의 주식을 보유한 계열사’로 정하고 기준이 되는 지분은 향후 시행령에 명시하기로 했다. 공정위에 따르면 현재 62개 대기업집단 전체 계열사 약 1800곳 중 총수 일가 지분이 30%가 넘는 계열사는 200개가량이다. 규제대상이 되는 총수 일가 지분을 이 정도로 잡을 때 전체 계열사의 10분의 1 정도가 규제대상이 되는 셈이다.
○ ‘엎어지면 코 닿는’ 거리에 동일 가맹점 못 들어서
이날 프랜차이즈 사업자들의 권리를 강화하는 내용의 ‘가맹사업법 개정안’도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에 따르면 앞으로 가맹본부는 계약을 체결할 때 사업자의 영업지역을 설정해 계약서에 기재해야 하고, 계약 기간 해당 지역 내에 동일한 업종의 가맹점이나 직영점을 설치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치킨집을 신규 계약할 때 영업지역이 반경 200m로 설정되면 가맹점은 그 지역 내 해당 프랜차이즈의 유일한 점포로서 독점적 지위를 보장받는 셈이다.
또 심야시간대 매출이 인건비에도 못 미치거나 업주가 질병에 걸려 영업에 차질이 생기면 가맹본부가 사업자의 영업시간 단축을 허용하도록 의무화했다. 이에 따라 주택가나 외진 골목길에는 심야시간에 문을 닫는 편의점이 속출할 것으로 보인다. 이 밖에도 가맹사업법은 같은 프랜차이즈의 사업자들이 단체를 결성해 가맹본부와 거래조건 등을 협의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본부가 사업자단체 활동을 이유로 사업자에 불이익을 주는 행위를 금지했다.
한편 국회는 대기업집단의 신규 순환출자를 금지한 공정거래법 개정안, 본사와 대리점 간 불공정거래 행위를 규제하는 일명 ‘남양유업법’ 등 다른 경제민주화 법률안은 다음 회기에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