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7일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 실무회담의 북한 대표단 실세는 수석대표인 박철수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 부총국장이 아닌 원용희 대표(사진)였던 것으로 파악됐다. 회담을 좌우하는 실력자가 전면에 나서지 않고 막후 역할을 하는 북한 특유의 협상술이 다시 등장한 것이다.
북한은 5일 대표단 3명의 명단을 한국에 통보하면서 박철수 부총국장 외에 허영호 원용희는 직함을 밝히지 않았다. 통일부는 자체 조사를 통해 허용호는 평양법률사무소장, 원용희는 특구개발지도총국 책임부원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2006년 12월 원용희를 개성공단에서 직접 만났던 정보당국 관계자는 7일 “원용희는 국가안전보위부(한국의 국가정보원에 해당)에서 개성공단을 포함한 남북 경협관련 사업 책임자로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남북회담의 실질적인 북한 측 수석대표는 원용희”라고 강조했다.
당시 원용희는 자신을 “총국의 고위 인사”로 소개한 뒤 무게를 잡고 앉아 말을 아꼈지만 북한 일행이 모두 원용희의 입만 쳐다보고 행동을 조심하는 등 좌중을 압도했다고 이 관계자는 전했다. 당시는 북한이 1차 핵실험(2006년 10월)을 한 직후로 개성공단을 대북 제재 대상에 포함시키느냐를 놓고 논란이 오간 민감한 시기였다. 일반인의 개성공단 방문도 한시적으로 제한되고 있었다.
정보당국 관계자는 “원용희가 ‘(제재 문제를 논의하고) 남측 관계자들을 만나기 위해 평양에서 직접 왔다’고 말했으며 세련된 행동과 조리 있는 말투 때문에 해외 근무 경험도 있는 것으로 추정됐다”고 말했다. 북한에서는 충성도가 높고 신분이 확실하지 않으면 해외 근무를 할 수 없다. 원용희는 2009년 해외공단 남북 공동시찰 때도 대표단에 포함된 바 있다. 2009년 열린 1, 2차 개성공단 남북 당국 간 실무회담에서도 박철수는 단장을 맡았고 원용희는 대표단의 일원으로 참석했다.
6, 7일 판문점 통일각에서 박철수는 회담 시작과 마무리 때 한국 취재진이 “한 말씀 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리를 떴다. 한 대북소식통은 “실권이 없는 대표는 침묵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번 북한 대표단에 포함된 허영호는 대외경협 등에 관한 법률전문가로 알려졌다. 회담장에 통일부에서 발간한 개성공단 법령집을 들고 나타나 눈길을 끌었다.
이에 앞서 북한은 지난달 12일 서울에서 열릴 예정이던 ‘남북당국회담’ 대표단을 통보하면서 수석대표에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서기국장 강지영을 지정한 반면 보장성원(지원인력)에 강 국장보다 상급자인 원동연 통일전선부 부부장을 포함시켰다. 정부 당국자는 “실제로 남북회담이 열렸다면 강지영이 아닌 원동연이 회담 기조와 대응 방침을 좌우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전문가들은 “회담 수석대표보다 실세를 막후에 배치하는 건 공산주의의 오랜 협상수법”이라고 입을 모았다. 상대방에게 협상 책임자의 성향과 기질이 노출되는 것을 막고 외형상 수석대표가 시간을 끄는 동안 대응전략을 짜 협상을 효율적으로 주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1951년 7월 열린 6·25전쟁 정전회담에서 중국 측 책임자는 대외적으로 중국인민지원군 부사령관 겸 부정치위원이었던 덩화(鄧華)였지만 실질적인 주인공은 막후에 있던 외교부 부부장 리커눙(李克農)이었다. 마오쩌둥의 지시를 받아 베이징(北京)에서 파견된 그는 대표단에서 누가 발언할 것인지는 물론이고 발언 시간과 좌석 배치까지 총괄했다는 사실이 비밀 해제된 중국 문서를 통해 확인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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