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폐의 갈림길에 서 있던 개성공단이 7일 남북 당국 실무회담 합의를 통해 가동 중단 사태를 풀 돌파구를 마련했다. 그러나 정부가 개성공단 재가동의 핵심 조건으로 요구하고 있는 ‘발전적 정상화’ 방안에 대해서는 남북 간 의견 차가 여전히 크다.
남북한은 이날 개성공단 입주 기업들이 공단 내에서 완제품 및 원부자재를 반출할 수 있도록 하고, 관련 절차에 따라 설비도 반출할 수 있도록 하는 데 합의했다. 또 장마철 피해를 줄이기 위해 기업 관계자 등이 10일부터 개성공단을 방문해 설비 점검 및 정비를 진행하도록 하는 데에도 합의했다. 남북 양측은 이런 활동을 위해 개성공단에 출입하는 남측 인원과 차량의 통행, 통신과 안전한 복귀 및 신변안전을 보장키로 했다.
회담의 남측 수석대표인 서호 남북협력지구지원단장과 북측 단장인 박철수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 부총국장은 6일 오전 판문점의 북측 시설인 통일각에서 전체회의 2회, 수석대표 접촉 10회를 가진 끝에 7일 새벽 이런 내용을 담은 4개항의 합의문에 서명했다. 북한이 개성공단 내 남측 인력의 통행을 제한한 4월 3일 이후 95일 만이다. ▼ 南, 개성공단 ‘발전적 정상화’ 방안 강력 촉구… 공은 北으로 ▼
정부가 제시한 3대 의제 중 △개성공단 시설 및 장비 점검 문제와 △완제품 및 원부자재 반출 문제는 이렇게 합의점을 찾았으나 △재발 방지책을 포함한 ‘발전적 정상화’ 방안을 놓고는 양측이 합의를 도출하지 못했다. 이에 따라 남북은 10일 개성공단에서 이를 논의하기 위한 후속 회담을 열기로 했다.
○ 강경한 ‘원칙’ 앞에 한발 물러선 북한
남측 대표단은 회담 초반부터 북한을 거세게 밀어붙였다. 서 수석대표는 기조발언에서 “북한의 일방적 조치로 인해 우리 기업이 입은 피해에 대한 책임 있는 입장 표명과 재발 방지 문제와 관련한 북측의 분명한 보장이 있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또 “이번 개성공단 가동 중단은 북한의 부당한 조치로 인한 것으로 남북 간 신뢰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조치였다”고 지적하며 기선 제압에 나섰다.
우선 협의 의제로는 개성공단 내 완제품과 원부자재의 조속한 반출 문제를 앞세웠다. 정부는 당초 3대 의제의 순서를 △시설 및 장비 점검 △완제품 및 원부자재 반출 △개성공단의 발전적 정상화로 밝혔지만 회담장에서 1, 2순위를 바꾼 것이다. 이는 북한이 남측 인력의 신변안전 보장 등 철저한 재발 방지책에 합의하지 않으면 원부자재를 모두 빼낸 뒤 개성공단을 완전히 닫아 버릴 수도 있다는 강경한 메시지를 담은 협상 전략이었다.
북한은 회담 초반 강경하게 맞선 것으로 알려졌다. 박철수 단장은 “기업들의 설비 점검 문제부터 최우선적으로 협의하자”고 요구했고, 원부자재 반출에 대해서는 “재가동을 염두에 두고 불필요하게 반출하는 일은 고려(재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논의 의제의 우선순위부터 확연한 인식 차를 보인 셈이다. 북측은 남측이 거론한 책임과 배상 문제에 대해서는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신변안전 보장’ 같은 표현에 대해서도 거부감을 표시하며 합의문에 넣을 수 없다고 버텼다고 한다.
그러나 북한은 7일 오전 4시까지 이어진 12차례의 접촉 끝에 결국 완제품 및 원부자재 반출은 물론이고 설비 반출까지 합의했다. 남측 인원 및 차량의 통행 통신, 신변안전 보장 등 정부가 요구한 조건도 사실상 모두 받아들였다. 서 수석대표는 회담 종료 후 판문점 남측 시설인 자유의 집에서 가진 언론 브리핑에서 “북측이 상당히 적극적으로 개성공단 문제를 풀어 나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정부 핵심 당국자는 “북한이 우리의 정당한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거나 사소한 문제로 트집을 잡고 나올 경우 정부는 회담에 매달리지 않고 ‘판을 깰 수도 있다’는 방침이었다”며 “절대 서두르지 않고 원칙대로 하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분명했다”고 설명했다.
○ 여전히 갈 길 먼 정상화
남북은 장마철을 앞두고 해결해야 할 시급한 현안에는 일단 합의했으나 개성공단 재가동의 핵심인 ‘발전적 정상화’를 향해서는 한 치도 나아가지 못했다. 정부가 16시간 넘게 진행된 이번 회담 중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북한과 접점을 찾으려 시도했으나 진전이 없었다.
이 문제는 일단 10일 개성공단 후속 회담으로 넘겼다. 정부는 개성공단 내 신변안전, 재산보호, 3통 문제에 대한 제도적 보완은 물론이고 중국 등 제3국의 기업 유치를 통한 국제적 규범 마련 등을 포괄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북한이 ‘홈그라운드’인 개성에서 일방적으로 행사해 온 통제권을 사실상 내려놓으라는 이 요구에 순순히 응할 것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 논의가 잘 이뤄지지 않을 경우 북한이 원부자재와 시설 반출 등 기존에 합의했던 것도 뒤엎어 버릴 소지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런 껄끄러운 쟁점들이 타결되지 못하면 개성공단은 재가동으로 나아가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미 활동 의사를 접은 기업들이 설비를 반출하며 연쇄적으로 철수하게 되면 정상화는 더욱 어려워진다. 정부는 이들 기업을 굳이 설득해 개성공단에 남도록 하지는 않을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통일부 당국자는 “이번 회담의 합의로 개성공단이 곧바로 다시 가동될 것이라는 기대는 너무 앞서 나가는 것”이라며 “재가동은 재발 방지 등 여러 가지 여건과 조건이 마련된 뒤 발전적 정상화 과정에 따라 이뤄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합의서가 채택된 지 3시간여 만인 오전 7시 29분 합의서 전문을 공개하며 신속히 보도했다. 합의 내용에 대한 별도의 평가나 코멘트는 내놓지 않았다.
<개성공단 당국실무회담 합의 내용>
남과 북은 개성공단 기업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해소하고, 개성공단을 발전적으로 정상화해 나간다는 데 인식을 공유하면서 다음과 같이 합의하였다.
1.남측 기업인 등 관련자들이 10일부터 개성공단을 방문해 설비 점검 및 정비를 진행한다. 2.완제품 및 원부자재를 반출하고 관련 절차에 따라 설비를 반출할 수 있도록 한다. 3.남측 인원과 차량의 통행과 통신, 안전한 복귀 및 신변안전을 보장한다. 4.가동 중단 재발 방지 등 개성공단 정상화를 위해 10일 개성공단에서 후속회담을 개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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