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아시아나항공 214편 착륙 사고가 발생한 지 이틀이 지났지만 사고 원인에 대한 궁금증은 오히려 더 커지고 있다. 납득하기 어려운 사고 정황이 속속 밝혀지고 있기 때문이다. 두 명이 합쳐 비행시간만 2만 시간에 이르는 베테랑 조종사들이 목표속도에 훨씬 못 미치는 속도로 활주로에 진입했다. 관제탑은 자동착륙유도장치(ILS)가 없는 활주로로 여객기를 보냈다. 기장이 ‘훈련비행’ 중이었다는 논란도 불거졌다.
○ 착륙 속도도 못 맞춘 기장?
이번 사고를 조사 중인 미 연방교통안전위원회(NTSB)는 8일 “충돌 7초 전 조종사들끼리 속도가 너무 느리다는 대화를 나눴다”고 밝혔다. 데버러 허스먼 NTSB 위원장은 “활주로 접근 목표속도는 시속 137노트였지만 사고 여객기의 속도는 이에 훨씬 못 미쳤다”고 말했다. 어느 정도 속도인지는 추가 조사를 이유로 밝히지 않았다. 최정호 국토교통부 항공정책실장은 “NTSB의 조사 결과는 블랙박스를 토대로 한 것이라 정확하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착륙 당시 속도가 실제 속도보다 낮았다면 조종사 책임론이 불거질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아시아나항공 측은 다른 주장을 펴고 있다. 비행시간 9793시간의 베테랑인 이강국 기장(46)과 부기장 역할을 하던 비행시간 1만2387시간의 이정민 기장(49)이 함께 착륙하며 그 같은 실수를 저지를 수 없다는 것이다. 윤영두 아시아나항공 사장은 이날 간담회에서 “우리가 가진 데이터에 따르면 (사고 항공기가) 관제탑으로부터 최종 착륙 허가를 받은 것으로 나온다”며 “착륙 전까지 전혀 이상 신호는 없었다”고 재차 확인했다.
○ ‘28L’ 활주로 배정 이유는
이날 관제탑이 사고 항공기에 배정한 활주로에 대한 의문도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관제탑은 사고기를 샌프란시스코 공항 28L 활주로로 유도했다. 문제는 이 활주로가 계기착륙 유도장치인 ‘글라이드 슬로프’가 고장 난 상태였다는 것이다. 항공고시보에는 지난달 1일부터 다음 달 22일까지 해당 활주로의 글라이드 슬로프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공지돼 있다. 글라이드 슬로프는 비행기가 활주로에 적절한 각도를 유지하면서 들어오도록 유도하는 장치다. 1997년 8월 발생한 대한항공 보잉 747기의 괌 추락 사고 당시에도 이 장치가 고장이 나 있었다.
고장 난 글라이드 슬로프가 사고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다. 허스먼 위원장은 미국 CBS방송과의 인터뷰에서 “공항 활주로 확장 공사로 착륙유도장치가 꺼져 있었다”며 “장치 미비가 반드시 사고 원인이라고 볼 수 없지만 문제가 됐을 수 있다”고 말했다.
○ ‘훈련비행’ 논란도
사고 당시 기장 역할을 했던 이강국 기장은 총 비행시간이 9793시간에 이르지만 사고 기종인 B777기 비행시간은 43시간에 불과하다. 항공당국에 따르면 이 기장은 새로운 기종에 적응하기 위한 ‘관숙(慣熟)비행’ 중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일각에서는 조종사의 미숙함이 사고에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하지만 아시아나항공과 국토부 측은 “관숙비행은 국제 항공업계의 관행”이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사고 기종의 조종 경험이 많은 이정민 부기장도 지난달 15일 B777 교관 자격을 취득한 뒤 실제 교관 역할을 한 것은 이날이 처음이었던 것으로 나타나 논란이 더 확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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