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수는 나눴지만…
10일 개성공단 종합지원센터에서 열린 개성공단 2차 실무회담에 앞서 남측 수석대표인 서호 통일부 남북협력지구지원단장(왼쪽)과 북측 수석대표인 박철수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 부총국장이 악수를 하고 있다. 개성=사진공동취재단
북한이 진행 중인 남북 대화가 마무리되기 전에 새로운 대화 제의를 쏟아 내고 있다. 정부는 “그야말로 대화 공세”라는 반응을 보이며 그 의도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남북한의 수석대표가 개성공단의 ‘발전적 정상화’를 논의하기 위해 회담장 테이블에 마주앉아 있던 10일 오후 북한 측이 정부에 보낸 2건의 문건이 판문점 연락관 채널을 통해 접수됐다. 개성공단 관련 실무회담과는 별도로 금강산 관광 재개와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논의하기 위한 별도의 실무회담을 하자는 내용이다.
북한은 최근 집중호우로 인한 예성강 수위를 조절하기 위해 이날 밤 12시에 예성강 발전소의 수문 1개를 열겠다는 ‘친절한’ 문건도 전달했다.
○ 북한의 진심 어린 ‘러브콜’인가? 공세 전술인가?
금강산 관광 재개와 이산가족 상봉 문제는 당초 남북한이 6월 12일 당국 간 회담을 통해 논의하기로 했던 핵심 의제였다. 그러나 북한이 회담 수석대표의 격(格)을 문제 삼으면서 회담이 개최 직전 어이없이 무산된 이후 관련 논의도 물밑으로 가라앉은 상황이다.
정부는 이에 대한 북한의 실무회담 제의를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는 반응이다. 올해 2월 3차 핵실험을 강행한 이후 국제사회의 강화된 대북 제재에 직면한 북한으로서는 고립 국면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떻게든 주변국들과의 대화에 나설 수밖에 없는 처지다. 최근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이 중국과 러시아를 잇달아 방문하고, 박의춘 외무상이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북-미 대화를 촉구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북한은 남북관계를 우선 개선하지 않고는 미국을 비롯한 다른 국가들과의 대화가 어렵다는 점을 인식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금강산 관광 재개를 위한 실무회담은 17일,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위한 회담은 19일로 구체적인 날짜와 장소까지 정해서 정부에 제안했다. 대화 공세를 강화하면서 속도까지 내겠다는 의도가 엿보이는 부분이다.
북한이 이산가족 상봉 관련 실무회담의 장소를 당초 제의했던 개성공단이나 금강산이 아닌 판문점 자유의 집에서 하자는 정부의 역제의를 받아들일 경우 19일에 또 다른 회담 트랙(track)이 굴러가게 된다. 10일 북한이 예성강 발전소의 수문 조절을 통보한 것처럼 여름철 장마 기간에 남북 간의 정보 교환, 수해 지원 등이 이어지면서 남북관계가 점차 개선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정부는 다만 금강산 관광에 대해서는 섣불리 북측의 유화 제스처에 말려들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난항을 거듭하고 있는 개성공단의 발전적 정상화 문제부터 풀어 낸 뒤 순차적으로 다음 현안을 논의하겠다는 것이다. 북한의 공세적 대화 제의가 ‘남북관계의 정상화를 차근차근 이뤄 내겠다’는 박근혜 정부의 의지를 흔들려는 전술적 측면도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 정부, “책임 인정부터 하라”며 북한 압박
실무회담이 열린다고 해서 바로 논의의 진전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이날 개성공단에서 열린 남북 당국 간 실무 후속 회담에서도 양측은 의견 차를 좁히지 못한 채 팽팽한 신경전을 벌였다.
남측 수석대표인 서호 통일부 남북협력지구지원단장은 이날 오전 개성공단 종합지원센터에서 열린 회담 기조발언에서 북한 측의 책임과 피해 보상 문제부터 다시 거론했다. 그는 “북한의 일방적인 가동 중지로 입주 기업들이 본 피해에 대해 북측의 책임 있는 입장 표명이 있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
그는 특히 북한이 개성공단 중단의 원인으로 ‘최고 존엄 비난’을 내세우는 것에 대해 “우리에게도 우리 체제의 최고 존엄이 있다”고 반박했다. 북한은 4월 초 남한 언론이 개성공단을 ‘달러박스’로 표현한 것, 국방부가 유사시 개성공단 내 인력 구출을 위한 군사작전을 언급한 것 등에 대해 “최고 존엄을 모독했다”며 개성공단 가동 중단의 빌미로 삼았다.
서 수석대표는 이와 함께 개성공단의 ‘발전적 정상화’가 무엇을 뜻하는지를 상세하게 풀어서 설명했다. 그는 △남측 인력들의 안전성을 보장할 수 있도록 신변안전 보장을 강화하고 △자유로운 기업 활동을 보장하며 △외국 기업도 투자하고 입주하는 국제적인 공단으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점을 설명했다. 특히 “누가 봐도 ‘이제는 더 이상 절대 일방적으로 통행과 통신을 차단하고 근로자를 철수시키는 일은 없겠구나’라고 인정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라”고 요구했다. ○ 북한, “개성공단 정상화부터 하자”며 ‘적반하장’
그러나 북측 단장인 박철수 중앙특구지도개발총국 부총국장은 개성공단의 국제화에 대해 ‘우리민족끼리’ 정신, 남북 간의 자주적 해결 노력을 규정한 6·15 공동선언 등을 언급했다. 국제화에 명시적으로 반대하지는 않았지만 ‘중국 등 제3국 기업의 개성공단 유치가 외세를 끌어들이는 것’이라는 기존 주장을 되풀이했다.
박 단장은 또 “남한이 개성공단의 정상 가동에 저촉되는 일체의 행위를 중지하라”고 요구하며 되레 남측에 재발 방지책 마련과 이행을 요구했다. 박 단장은 모두발언에서도 “비가 많이 오는데 기업 설비 자재 상황 걱정이 크다”며 공단의 조속한 재가동을 강하게 요구했다.
양측은 오전 전체회의를 25분 만에 끝낸 데 이어 오후에 3차례 수석대표 접촉을 진행했지만 짧게는 7분 만에 종료되는 등 논의가 안정적으로 진행되지 못했다. 후속 회담에서도 의견차를 좁히지 못한 남북한은 15일 개성공단에서 3차 회담을 열고 다시 협상에 나선다. 정부 당국자는 “한 번에 끝날 협상이 아닌 만큼 무리해서 강행하지는 않을 방침”이라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