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북 카페]마고 미플린의 ‘파괴의 몸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7월 13일 03시 00분


타투, 美선 유행 넘어 예술의 경지… 여성의 눈으로 본 그 은밀한 역사

영국 런던에서 활동하는 여성 타투 작가 사이라 훈잔의 작품. 그는 ‘황금바늘을 가진 여인’이라는 예명으로 유명인들에게 예술작품 같은 타투를 그려 줘 명성을 얻었다. 사진 출처 ‘파괴의 몸들’
영국 런던에서 활동하는 여성 타투 작가 사이라 훈잔의 작품. 그는 ‘황금바늘을 가진 여인’이라는 예명으로 유명인들에게 예술작품 같은 타투를 그려 줘 명성을 얻었다. 사진 출처 ‘파괴의 몸들’
미국 뉴욕의 맨해튼 거리를 오가며 눈길을 사로잡는 것 중 하나가 사람들의 문신(타투)이다. 한국에서는 우락부락한 남성 이미지와 겹쳐 문신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적지 않지만 미국에서는 유행을 넘어 예술 장르로 변모해 가는 느낌이다.

그 중심에는 여성이 자리 잡고 있다. 지난해 미국에서 문신을 한 여성(23%)이 남성(19%)을 추월했다. 이를 계기로 문화 저술가인 마고 미플린이 ‘파괴의 몸들―여성과 문신의 숨겨진 역사’ 증보판(파워하우스북스)을 최근 내놓았다. 1997년 처음 출간된 이 책은 문신의 역사를 여성의 관점에서 새롭게 조명해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이 책은 문신이 중국에서 시작됐다고 주장한다. 중국인들이 행운의 상징으로 어깨에 새겨 넣은 그림이 19세기 서구사회로 전파된 뒤 전 세계로 퍼졌다는 것이다. 문신의 세계화 과정에서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바로 여성이라는 게 이 책의 핵심 주장이다.

증보판은 여성 백인으로서 최초로 문신을 한 인물을 1858년의 올리브 오트먼으로 못 박는다. 미국 웨스트 일리노이에 살았던 이 여성은 어린 시절 가족과 헤어져 모하비 인디언들의 손에 키워졌다고 전해진다. 그녀의 턱에 새겨진 모하비 인디언의 문신은 ‘사후세계로 통하는 길을 보장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하지만 서양에서 문신의 유행은 미국 대륙이 아니라 유럽에서 주도했다. 19세기 말 유럽 상류층의 유행 가운데 하나가 문신이었다. 유명인사 중 대표적 문신 애호가로는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의 어머니 랜돌프 여사가 손꼽힌다. 그는 손목에 자신의 꼬리를 삼키는 뱀을 새겨 넣었는데 이는 영생(永生)의 상징이었다.

유럽의 유행이 미국으로 넘어온 것은 20세기 초였는데 그 열풍은 놀라울 정도였다. 일간지 뉴욕월드는 당시 미국 여성의 75%가 눈에 띄지 않는 신체 부위에 문신을 새겼다고 보도했다. 1920년대엔 문신을 한 여성은 서커스와 각종 쇼에서 큰 인기를 끌어 문신을 한 남성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많은 돈을 벌었다. 문신 열풍은 제2차 세계대전을 기점으로 급격히 수그러든다. 전쟁포로나 수용소 수감자의 몸에 새겨진 수형번호의 공포 때문이었다.

영국에 랜돌프 처칠이 있었다면 미국에는 제니스 조플린이 있었다. 27세로 요절한 이 여성 백인 블루스 로커는 공개적으로 문신을 드러낸 최초의 미국 유명 여성이었다. 왼쪽 팔목에 새긴 프렌치풍 목걸이 문신과 가슴골의 작은 하트 표시 문신이었다.

저자는 현대에 들어서면서 여성의 문신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자신감으로 변모해 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여성들이 ‘과연 내 몸은 누가 지배하느냐’를 고민하면서 문신이 여성의 자결권을 드러내는 상징이 됐다는 것이다. 160쪽의 책은 낯선 역사적인 사실과 익숙한 대중문화의 코드가 혼합돼 있어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아름다운 문신을 한 여성의 몸을 담은 사진도 빼어나다.

뉴욕=박현진 특파원 witness@donga.com
#파괴의 몸들#타투#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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