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한상복의 여자의 속마음]<22>아내의 가사노동은 감정노동?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7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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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혼 여성 대상 조사에서 언제나 스트레스 주범 1위를 차지하는 것이 ‘가사노동’이다. 가사노동은 대부분의 남편에겐 ‘그깟 일’쯤으로 인식된다.

산업사회 이전에는 달랐다. 집안일에서 남편과 아내의 구분이 없었다. 남편을 뜻하는 영어 단어 ‘husband’에서 ‘hus’는 ‘house’(집)의 옛말이며 남편이란 ‘집(hus)을 묶고 있는(band) 사람’에서 나온 것이다.

그런데 산업혁명으로 남자가 공장으로 일하러 가게 되자, 가사를 여성이 전담하게 되었으며 ‘집안일(housework)’이라는 단어도 이때 등장했다. 뒤늦게 산업 발전 대열에 합류한 우리나라의 맥락도 서구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고도 산업사회의 도래와 함께 고등교육을 받은 여성들이 노동시장에 쏟아져 나오면서 또다시 분업 규칙의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이에 따라 여성들은 남편의 가사노동 분담을 목소리 높여 요구하게 됐다.

젊은 남편들을 중심으로 가사를 분담하는 경우도 늘고 있지만 대부분의 남성은 여전히 뿌리 깊은 유교 의식을 토대로 상반되며 모순된 생각을 고수하고 있다.

아내 기준으로는 ‘그깟 일’이던 가사노동이 어머니를 기준으로 하면 ‘고결한 희생’으로 둔갑한다. 도우미 아줌마에게는 비싼 대가를 치르면서도 아내의 가사노동은 공짜라고 믿는다.

게다가 가사노동은 노동이 아닌 ‘당연한 애정 표현’으로 여겨진다. 정성스러운 밥상을 차려 줘야 제대로 된 아내이며, 집안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꾸며야 능력 있는 주부라는 평가를 받는다. 식구를 기쁘게 해 주려는 취지의 노동이란 의미에서 가사노동은 감정노동이다.

가사노동이 감정노동과 맞닿는 가장 확실한 이벤트는 명절이다. 아내들이 명절 시즌만 되면 끙끙 앓는 이유는 육체노동보다 힘든 감정노동에서 비롯된다. 시어머니 및 동서들과 연 이틀 붙어서 함께하는 노동이 즐거울 리 없다.

어떤 시어머니는 며느리와 주방에서 맞붙는 순간 괴물급 투수로 변신해 교묘한 ‘언어의 공’을 찔러 넣는다. 고의성인지 확인하기 어려운 폭투가 며느리의 아픈 곳에 정통으로 내리 꽂힌다. 예를 들면 이런 공이다. “네 남편은 고생을 해서 살이 쪽 빠졌던데 너는 요즘 편안한가 보구나.”

아픈 감정은 헤아리고 보듬어 주는 사람이 있다면 최소한 응어리로 남지는 않는다. 하지만 많은 남편이 아내의 가사노동 속에 억눌려 있는 감정을 보살피는 데 익숙하지 못하다. 그 결과가 신세 한탄을 끊임없이 늘어놓게 되는 아내들이다. 이런 아내는 나중에 시어머니 혹은 장모가 되었을 때 괴물급 투수 자리를 대물림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남편도 그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한상복 작가
#가사노동#스트레스#유교 의식#감정노동#명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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