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는 위안부 문제를 먼저 청산했어야 했어요. 일본은 한국과 중국에 사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일본이 자국민을 귀하게 여기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대한 겁니다.”
26일 오후 일본 도쿄(東京) 도 고가네이(小金井) 시 지브리 스튜디오에서 만난 일본 애니메이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宮崎駿·72) 감독은 최근 일본의 우경화 움직임을 매섭게 비판했다. 이달 20일 일본에서 개봉한 그의 신작 애니메이션 ‘바람이 분다’의 9월 초 한국 개봉을 앞두고 열린 한국 기자들과 간담회 자리였다.
미야자키 감독은 “소련의 붕괴와 일본 버블경제의 붕괴가 거의 동시에 일어나면서 일본의 역사의식도 함께 무너졌다”며 과거사 왜곡을 주도하는 일본 정치인도 거침없이 비판했다. 하시모토 도루(橋下徹) 일본유신회 공동대표에 대해선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그의 입에 의해 오르내리는 것 자체가 굴욕적”이라고 했고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에 대해선 “지금 총리는 곧 교체될 것이기 때문에 그의 말이 별것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바람이 분다’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일본 전투기 제로센을 설계한 실존 인물 호리코시 지로의 생애를 담은 작품. 호리코시는 열심히 노력해 아름다운 비행기를 만드는 어린 시절의 꿈을 성취하지만 참혹한 결과를 초래한다.
“호리코시의 설계로 만든 1만 대 이상의 비행기가 전쟁에 쓰였어요. 그가 자신이 저지른 것에 대해 의식이 없었다고 해서 죄가 없는 것은 아니죠. 열심히 일한다고 좋은 결과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얼마 전 아베 정권의 헌법 개정 움직임을 공개 비판한 그는 “(헌법을 바꾸면) 시대가 크게 움직이고 어려워질 수 있다”며 “영화 속 호리코시가 열심히 일했지만 불행했던 것처럼, 우리 사회도 맹목적으로 달려가면 불행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영화에 등장하는 1923년 간토 대지진과 당시 사람들의 절망감은 현재 일본 사회에 팽배한 불안감과 묘하게 공명한다. “제가 이 영화를 제작 중일 때 3·11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났어요. 간토 대지진은 안정적이던 일본 사회를 바꿔놨어요. 당시 3만8000여 명이 죽었죠. 동일본 대지진을 계기로 지금 일본 사회도 바뀌고 있는 것 같아요.”
그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1984년) ‘이웃집 토토로’(1988년) ‘붉은 돼지’(1992년) ‘원령공주’(1997년) 같은 걸작으로 일본 애니메이션의 세계화를 주도했다. 2002년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애니메이션으로는 이례적으로 베를린 영화제 황금곰상을 받았다. ‘바람이 분다’는 다음 달 열리는 베니스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됐다.
“애니메이션은 아름다운 꿈이에요. 현재는 영화를 비즈니스로만 생각하는 게 안타깝습니다. 영화인들도 오로지 흥행성적만 생각해요.”
그는 애니메이션 분야에서 50년 넘게 일했다.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비결이 궁금했다. “어떤 렌즈로 보느냐에 따라 세상이 달라지죠. 저는 사물과 사람을 관찰할 때 사진을 찍지 않습니다. 눈으로 보고 그것을 기억해 그림을 그려요. 그래야 사물의 본질을 볼 수 있어요. 편리함을 추구할수록 감각은 열악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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