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새누리당 김태호 의원(51)은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 2010년 8월 40대 국무총리 후보자로 깜짝 발탁됐다가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경남도지사 시절 관사 도우미 도청 직원 활용 등 여러 의혹이 불거져 곤욕을 치렀고 검증 과정을 넘지 못해 결국 지명된 지 21일 만에 자진 사퇴했다.
25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김태호를 만났다. 당시 상황부터 먼저 물어봤다. 그는 “청문회 과정에서 국민에게 많은 아픔을 줬다”고 반성했다. 그는 당시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을 만난 시점에 대해 “2007년 이전까지 일면식도 없었다”고 말했다가 2006년 2월에 열린 한 출판기념회에서 박 전 회장과 함께 사진을 찍었고, 그해 10월 함께 골프를 친 사실이 드러난 적도 있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말이 정치인이 ‘기억이 안 난다’고 하는 거였어요. 명확하게 안 만났으면 안 만난 거지. 당시 내 판단은 둘이 만나서 차라도 한 잔 하는 게 ‘일면식’이었거든. 촌놈식으로 하지 말고 세련되게 (대처를) 했어야 했는데 내공이 부족했던 거죠.”
사실 1962년생인 김태호는 1998년 경남도의원을 시작으로 2002년 최연소 기초단체장(거창군수)과 2004년 최연소 광역단체장(경남도지사), 2006년 도지사 재선 성공 등 화려한 정치인의 길을 걸어 왔다. 호감 가는 외모와 언변, 뛰어난 대중 친화력, 군수와 도지사 시절 쌓은 행정 경험 등으로 ‘차세대 정치인’으로 주목을 끌었다.
총리 후보 낙마는 승승장구하던 그의 첫 시련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대로 주저앉지는 않았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향인 경남 김해을에서 2011년 4·27 보궐선거에서 승리했고 지난해 4·11총선에서도 당선되며 재기에 성공했다. 명실상부하게 중앙 정치인으로서 제2의 정치인생을 시작한 것이다.
국회에 입성한 지 2년이 지났지만 그는 아직 여의도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 2011년 4월 초선 의원이 됐지만 1년 내내 지역구에서 지지 기반을 닦는 데 매달려야 했고, 지난해 4월 재선 성공 이후에야 겨우 반경을 조금씩 넓히기 시작한 수준이다. 당직을 맡은 것이 없기 때문에 주요 정치 현안에 대한 공개 발언은 나오지 않고 있다. 또한 가급적 언론 인터뷰도 피하고 있다고 한다. 원래 주요 현안에 대해 가감 없이 직격탄을 날리는 스타일인데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 6개월까지는 스스로 ‘허니문’ 기간으로 설정해 놓았다는 것이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이 나름대로의 철학이 있을 것”이라며 “최소 6개월은 우리가 믿고 봐주는 게 맞다”고 했다.
그럼에도 새누리당 안팎에선 정치적 시련을 겪고 중앙 무대에 진출한 그의 ‘잠재력’에 관심을 갖는 이들이 적지 않다. 정치철학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는 망설임 없이 “조국에 대한 사랑을 기본으로 (정치적으로) 죽을 자리가 있으면 그곳에서 죽는 것”이라며 “용기 있게 결단을 내려서 모든 것을 던질 수 있는 자세”라고 밝혔다. 실제 그는 인터뷰 내내 ‘용기’라는 단어를 자주 강조했다.
물밑 움직임이 궁금했다. 그는 국회의원 재선에 성공한 이후 정치철학을 공유할 수 있는 의원들을 꾸준히 접촉하고 있다고 했다. 초선 및 재선 의원들을 만나 자신을 알리고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을 밟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중앙정치 무대인) 서울 여의도에서 동료 의원들에게 신뢰를 얻지 못하면 혼자서는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한다”면서 “우선 현역 의원들한테 신뢰를 얻어야 한다. ‘우리가 정치하는 이유가 이거다’라며 뜻을 같이할 수 있는 동료들을 만나기 위해 교류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아직 자신이 중심이 된 의원모임을 갖고 있지 않다. ‘친한 의원이 누구냐’는 질문에 “깊어지면 자연스럽게 드러나겠지…”라며 말을 흐렸다. 주말에는 지난해 대선 경선 과정에서 인연을 맺은 외부 인사들과도 만남을 이어가고 있다.
김태호에겐 아직 지워지지 않는 ‘주홍글씨’도 있다. 그는 지난해 11월 9일 “국민을 마치 홍어× 정도로만 생각하는 국민 사기쇼는 즉각 중단돼야 한다”고 말하면서 한순간에 막말 정치인이 됐다. 당시 당 중앙선거대책위 공동의장이던 그는 선대위 회의에서 민주통합당 문재인, 무소속 안철수 대선후보의 단일화 논의를 비판하면서 ‘홍어×’이라는 원색적 말을 질러버렸다. 특정 지역을 연상시키는 듯한 발언이어서 파장이 컸다. 그는 “분노의 표현이 지나쳤다”고 사과했지만 격한 발언의 파장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 결국 국회 윤리특위에 제소됐고 올 2월 징계심사소위에서 ‘공개회의에서의 경고’ 조치를 받았다. 김태호에게 ‘후회하느냐’고 물어봤다. 그는 솔직하게 답했다. “너무 세게 나갔어요. 부적절했죠. ‘내 편’이 아니면 ‘적’이라는 이분법적 정치사고에 물들어 있었던 겁니다.” 한마디로 지금은 반성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그는 지난해 7월 ‘세대교체’를 키워드로 대선 출마를 선언하며 당내 대선후보 경선에 뛰어들기도 했다. 그러나 결과는 3.2%의 초라한 성적표(3위)였다. “김태호가 (총리 후보 자진 사퇴의) 아픔을 딛고 새로운 도전에 나설 에너지를 갖고 있으며 여전히 가슴이 뜨겁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새누리당 일각에선 그가 내년 전당대회에 나올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일단 김태호는 “아직 생각을 안 하고 있다”고 선을 그었지만 결과에 따라선 부산·경남(PK) 지역을 대표하는 젊은 정치인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새누리당의 한 의원은 “김 의원이 좋든 싫든 다른 의원들의 권유로 전당대회에 PK 대표선수로 나올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면서 “중앙 정치인으로서 적응기가 끝나고 자신의 정치적 브랜드만 제대로 찾으면 당 지도부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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