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악마 ‘역사 잊은…’ 현수막에 발끈, 스가 관방 “극도로 유감” 강력 항의
한국 누리꾼들 “몰염치의 극치” 성토… “붉은악마도 오해 살 행동” 의견도
동아시안컵 축구대회 한일전이 경기장 밖 싸움으로 이어졌다.
일본 정부가 28일 서울 잠실종합운동장에서 열린 동아시안컵 한국-일본 경기 때 ‘붉은악마’ 응원단이 내건 현수막을 문제 삼고 나선 것이다. 붉은악마는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현수막을 경기장 안에 걸었다. 일본 정부 대변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29일 “국제축구연맹(FIFA)은 응원할 때 정치적 주장을 금지하고 있다. 극도로 유감이다. 사실 관계가 분명해지면 FIFA 규약에 근거해 대응할 것이다”고 말했다. 일본축구협회는 동아시아축구연맹에 항의문을 제출했다.
한일전에 앞서 대한축구협회는 “정치적 메시지를 담은 현수막을 경기장 안으로 들이는 것은 자제해 달라”고 붉은악마 측에 요청했다. 국내 축구 팬들 사이에서도 붉은악마의 현수막 게시는 적절치 못했다는 의견이 없지 않다. 지난해 런던 올림픽 때 ‘독도 세리머니’를 했던 박종우 선수가 FIFA의 징계를 받은 것도 비록 우발적이지만 정치적 메시지로 해석될 여지가 있는 행동을 경기장 안에서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붉은악마의 현수막 설치에 발끈하고 나선 일본 정부는 28일 한일전 때 욱일기를 휘날린 일본 응원단에서 대해선 일언반구도 없다. 일본 응원석에서는 대회 진행요원이 제지하기 전까지 10분가량 대형 욱일기가 펄럭였다. 1889년 일본 해군 군함기로 지정된 욱일기는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본이 아시아 각국을 침략할 때 사용했던 군국주의의 상징이다. 일본 내 우익 진영은 욱일기를 두고 “옛날부터 사용해 온 문양으로 문제될 것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본은 지난해 런던 올림픽 때 체조 대표팀의 유니폼에 대놓고 욱일 문양을 넣기도 했다.
하지만 일본의 욱일기 사용은 태평양전쟁 피해국의 상처를 건드리는 것으로 한국을 비롯한 주변국의 항의를 계속 받아왔다. 일본도 욱일기가 정치적으로 논란이 된다는 것은 알고 있다. 일본축구협회는 지난해 8월 30일 일본 도쿄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FIFA 20세 이하 여자 월드컵 한국-일본 경기 직전에는 욱일기의 경기장 반입을 금지했다. 그러나 우익 단체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욱일기 반입을 허용했다.
또한 이번 한일전 욱일기 파동에 앞서 올해 4월 3일 일본 사이타마에서 열린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전북-우라와(일본) 경기 때도 욱일기가 등장했다. 이때 붉은악마는 일본 프로축구 J리그와 우라와 구단에 사과를 요구했다. 붉은악마는 성명을 통해 7월 열리는 동아시안컵에서 정치적 메시지를 포함한 응원도구나 한국 국민을 자극할 도구의 반입을 차단하겠다고 예고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욱일기가 주는 상처를 모를 리 없는 일본이 붉은악마의 현수막만 문제 삼고 나선 데 대해 국내 누리꾼들은 “적반하장, 몰염치, 수준 이하” 등의 격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욱일기 사용에 대해 엄중한 항의와 재발 방지를 위한 국내의 노력이 부족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민주당 안민석 의원은 욱일기 반입에 대한 책임을 물어 일본축구협회를 FIFA에 제소할 것을 29일 대한축구협회에 요구했다. 안 의원은 “우리 정부가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FIFA에 항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욱일기 사용과 경기장 내 반입 금지를 위한 촉구 결의안은 지난해 9월 안 의원이 대표 발의하고 국회의원 67명이 동참했지만 아직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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