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는 상황으로 ‘한반도 유사시’를 명시적으로 거론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이 군사 안보 문제와 관련해 ‘한반도 유사시’를 적시하는 것은 처음으로 그 의도를 두고 논란이 예상된다.
일본 정부는 집단적 자위권 행사와 관련해 다음 달부터 자민-공명 연립여당과 당정 협의를 시작할 방침이라고 요미우리신문이 14일 보도했다. 협의를 거쳐 마련할 집단적 자위권 행사 사례집에 ‘한반도 유사시 미군 지원 활동’을 명기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집단적 자위권은 자국이 공격받지 않아도 미국 등 동맹국이 공격받으면 타국에 반격할 수 있는 권리다.
이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내각이 남북한 간 무력충돌 등 ‘한반도 유사시’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논리로 개입할 수 있음을 공식화한다는 의미다. 일본 정부는 자위대의 활동 범위를 확대한 주변사태법(1997년)과 유사법제(2003년)를 제정할 때도 한반도 유사시를 상정하고 있다는 의혹을 받았지만 명시하지는 않았다.
일본 정부는 사례집에 ‘일본으로 원유를 운반하는 해상 교통로에서의 기뢰 제거 작업’도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인정하지 않는 현행 헌법 해석으로는 대응이 곤란한 사례로 넣을 방침이다.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을 부정적으로만 볼 게 아니라는 주장도 나온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벌어졌을 때 주한미군에 대한 일본의 후방 지원 등 한미일 안보 협력은 오히려 환영할 일이라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 말기 한일 간 군사정보보호협정을 추진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문제는 “침략의 정의는 정해진 게 없다”는 아베 총리의 발언에서 나타나듯 일본이 여전히 그릇된 역사인식을 가진 채 군사 대국화를 추진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이 궁극적으로 중국을 겨냥하고 있는 점도 한국으로서는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정부가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추진에 대해 말을 아낀 채 추이를 지켜보는 것은 이 때문이다.
정부는 일본 언론의 보도에 대해 정부 차원의 대응을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판단에 따라 공식 논평을 내놓지 않았다. 다만 한 당국자는 “일본이 평화헌법과 전수(專守)방위의 원칙에 따라 세계평화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협의를 이끌어 가야 한다는 게 정부의 기본 생각”이라며 “일본의 움직임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언론도 관련 소식을 즉각 전하며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반관영통신 중국신원왕(新聞網)은 14일 “일본이 한국에 충분한 설명을 하지 않은 채 한반도 유사시를 가정한 집단적 자위권 논의를 계속하면 일대 풍파를 일으킬 것”이라고 보도했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은 “일본이 진정으로 오해를 피하고 싶다면 집단적 자위권이 한국에 어떤 의미가 있고 동북아 평화를 위해 일본이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를 명확히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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