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첫 소설집인 이 책은 독자들에게 새로운 ‘스타일리스트’의 등장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동일한 인물이 서로 다른 우주(또는 차원)를 살아가는 이른바 ‘다중우주 이론’을 녹여 한국에서도 인기몰이를 한 미국드라마 ‘로스트’나 ‘프린지’의 팬이라면 이 스타일에 홀딱 반할지도 모르겠다.
작품의 배치부터 다중우주 이론에 대한 작가의 애정이 느껴진다. 모두 9편의 단편으로 구성된 이 소설집은 201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수상작 ‘담요’로 시작해 지난해 문학잡지에 발표된 ‘애드벌룬’으로 끝난다. 흥미로운 점은 ‘담요’에서 콘서트장 총기난사 사건으로 사망한 주인공의 아들이 ‘애드벌룬’에서는 멀쩡히 콘서트장을 빠져나와 주인공으로 이야기를 끌어간다는 것. 두 작품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서로를 간섭하되 독립적인 하나의 우주 역할을 한다.
추리소설과 미국드라마, SF소설 등 다양한 장르물의 세례를 받은 이 1980년생 작가의 또 다른 스타일은 작품 속 공간에서 시대성이나 공간성이 모호하다는 점이다. 번역투 문장의 의도적인 구사나 외국인 인물의 잦은 등장이 효과적인 도구로 활용된다. 작가는 시대성과 공간성을 거세한 공간 위에 인물들을 마치 틀린 철자법처럼 배치하고는 이들 사이의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어긋남을 드러내는 데 주력한다.
부부 관계는 작가의 이런 실험에 단골 소재다. 가정부가 자기를 유혹했다고 오해해 연서(戀書)를 보내다가 아내에게 버림받는 천재 과학자(‘과학자의 사랑’), 아내와 조감독의 사랑 앞에 무너져버린 영화감독(‘그들에게 린디합을’), 남편의 외도를 의심하는 아내와 그 의심이 황당한 남편(‘육인용 식탁’) 등이 대표적이다.
통속적인 연애물의 외투를 걸친 작품에서조차 작가는 독자가 궁금해 할 오해와 의심의 실체를 밝히는 데 무관심하다. 대신 이 때문에 신음하는 인물들의 모습을 조명해 ‘이런 신음이 아마도 세상의 모든 것 아니겠느냐’는 메시지를 전해준다. 스타일을 극단으로 밀어붙여 희소성을 확보한 것은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이지만, 서사나 위안에 무심한 소설에 냉담했던 독자들의 마음을 얻는 것은 남아 있는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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