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세프(UNICEF) 한국위원회 사무총장이 기부금을 개인 용도로 사용했다가 해임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2000만 원의 후원금을 개인적으로 사용했다면 책임을 면하기 어려운 중한 범죄다. 유엔 산하 국제기구의 한국 실무 책임자가 공금을 쌈짓돈처럼 썼다니 나라 망신이 아닐 수 없다.
한국위원회는 지난해 10월 미국 뉴욕에서 ‘사랑의 기내 동전 모으기 운동’의 기부금이 70억 원을 돌파한 것을 기념하는 행사를 열었다. 당시 류모 사무총장이 “행사 운영비가 필요하다”며 민간단체장에게 후원금을 받아 개인적으로 사용했다는 것이다. 기념행사 후 해당 단체가 영수증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횡령 사실이 드러났다. 한국위원회는 류 사무총장의 자진 사퇴를 요구했으나 “억울하다”며 따르지 않자 올해 1월 이사회를 열어 해임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니세프는 국적 이념 종교 등의 차별 없이 어린이를 구호하기 위해 1946년 설립됐다. 아동 구호 기관 가운데서도 대표적인 곳이라 유명 인사도 많이 참여한다. 영화배우 안성기 씨는 유니세프 대사를 맡고 있고, ‘피겨 여왕’ 김연아 씨는 최근 세계피겨스케이팅선수권대회 우승 상금 전액을 기부했다. 기업들도 사회공헌 활동을 할 때 유니세프와 손잡는 것을 선호한다. 그러나 이번 사태로 신뢰를 잃게 됐다.
인터넷에는 “굶주린 어린이들을 위해 매달 생활비를 덜어 2만 원씩 후원해 왔는데 이럴 수가 있느냐”는 등의 댓글이 달리고 있다. 한국위원회 측은 “후원을 끊겠다는 전화가 줄을 잇고 있다”면서 “한 사람의 잘못으로 많은 어린이가 피해를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울상이다. 가뜩이나 기부문화가 활발하지 않은 한국에서 온정의 손길이 더 줄어들까 걱정이다.
한국은 유니세프 사상 처음으로 지원받는 나라에서 지원해 주는 나라로 변신했다. 1950년에 이 단체에 가입해 1993년까지 지원받다가 지원해 주는 나라로 바뀌면서 1994년 한국위원회를 설립했다. 한국위원회가 지난해 기업과 민간단체, 일반 시민들로부터 모금한 금액이 945억 원, 정기 후원자는 32만여 명에 달할 만큼 규모가 커졌다. 남을 도울 만큼 경제적 물질적으로 풍요해지면 정신적 도덕적 수준도 그만큼 높아져야 한다는 사실을 이번 사건은 일깨워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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