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18일 한국 정부에 금강산관광 재개 회담을 갖자고 거듭 제의한 이유는 금강산관광에 대한 강한 애착 때문으로 보인다. 특히 남한의 이산가족 상봉 제안을 수용하면서 동시에 금강산 회담을 제의해 두 사안을 연계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북한이 지난달 10일 이산상봉과 금강산관광을 논의하자고 제의했을 때 정부는 상봉 회담은 수용하면서도 금강산 회담은 ‘개성공단 문제에 우선 집중하자’는 이유로 거부하는 분리대응 카드를 썼다. 정부는 이번에도 이산상봉 문제에는 적극성을, 금강산에 대해서는 신중론을 보이는 ‘시간차 전략’으로 대응했다. ○ 북, 회담 제의 날짜·형식 치밀하게 계산한 듯
북한은 18일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대변인 담화의 발표 시간과 형식을 치밀한 계산 끝에 내놓은 것으로 보인다. 16일 한국이 이산상봉을 제안한 뒤 침묵하다가 일요일 오후 전격 발표한 것이다. 이는 주말에는 판문점 남북 연락관(적십자 채널)이 근무하지 않아 빨라야 월요일에나 답변이 올 것이라는 예상을 깬 조치다. 또 당국 간 채널이 아닌 조선중앙통신 보도를 통해 담화 내용을 누구라도 볼 수 있도록 했다.
북한은 이산상봉과 금강산관광 회담의 선후(先後)도 따진 흔적이 보인다. 22일 금강산 회담을 먼저 개최한 뒤 그 결과가 23일 이산상봉을 위한 적십자 회담에 영향을 주는 구조로 만들어놓은 셈이다. 북한은 지난달 두 회담을 제안할 때도 금강산관광을 17일, 이산상봉을 19일 순서로 배치했다.
제안한 회담 장소에도 정치적 의도가 담겼다. 북한은 “장소는 금강산으로 하여 회담 기간 면회소도 돌아보고 현지에서 이용 대책을 세우도록 한다”고 말했다. 금강산은 교통이 불편하고 통신시설도 없어 회담장으로 부적절하다는 게 정부의 기본 인식이다. 면회소 점검을 굳이 회담 날짜에 맞출 필요도 없다. 그럼에도 북한이 금강산을 회담 장소로 고집한 것은 2008년 관광 중단 이후 발길을 끊은 한국 당국자가 이곳을 방문하는 선례를 만들려는 목적이 더 크다. 북한은 개성공단 회담 때도 회담 장소를 개성으로 고집해 우여곡절 끝에 관철했고 6차 회담이 결렬되자 남측 기자실에 난입해 일방적인 기자회견을 갖는 ‘홈그라운드 이점’을 십분 활용했다.
○ 남북 간 핑퐁게임식 신경전 전개될 수도
북한 조평통 대변인은 이날 담화에서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을 동격(同格)으로 놓고 재개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조평통 대변인은 “개성공업지구와 금강산관광은 다같이 화해와 단합, 통일과 번영의 상징으로 더는 지체할 수 없는 절박한 민족 공동의 소중한 사업”이라고 주장했다.
한국 정부의 인식은 이와 상당한 차이가 있다. 개성공단은 북한 주민에게 시장경제 문화를 전파하고 북한 경제를 국제사회로 편입시킬 수 있는 교육효과가 있는 반면 금강산관광은 그야말로 ‘퍼주는 달러박스’에 불과하다고 보고 있다. 금강산관광지구가 일반 북한 주민과의 접촉이 차단된 외진 곳인 데다 관광 대가로 지불되는 현금이 언제든 무기 개발에 전용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이산가족 상봉에 영향을 덜 주는 방식으로 금강산관광 회담을 분리해내기 위한 방안을 연구 중이다.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진 뒤로 날짜를 잡거나 상봉 행사를 금강산이 아닌 곳에서 갖자고 하는 방안 등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이르면 19일 금강산관광 회담에 대한 방침을 북한에 전달할 계획이다.
우승지 경희대 교수는 “금강산관광은 북한에 개성공단보다 훨씬 저비용 고효율의 수익사업으로 2008년 ‘관광객 피격사망’ 사건이 없었다면 중단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김정은 체제가 주력하고 있는 원산·마식령 스키장과 연계 개발도 가능하다는 점에서 관광 재개에 큰 기대를 거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현대아산 측은 “남북 실무회담을 통해 5년간 중단된 금강산관광이 하루 속히 재개되기를 기대한다”는 환영의 뜻을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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