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日관계 바로세우기 앞장선 ‘일본의 양심’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20일 03시 00분


■ 무라야마 도미이치 前총리는
8선 거친후 2000년 정계은퇴 선언… 2003년 79세 나이로 영화 출연도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전 일본 총리는 대표적인 일본의 진보인사로 ‘일본의 양심’으로 불린다. 일본 보수단체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그는 평화헌법 수호, 과거사 반성, 아시아 국가와의 연대 등 자신의 철학을 꺾지 않았다. 역대 어느 총리보다 한일 관계 개선에도 적극적이었다.

무라야마 전 총리는 부유하지 않은 가정에서 주경야독한 후 노동운동을 거쳐 총리까지 된 입지전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1924년 3월 오이타(大分) 현 오이타 시 어부의 가정에서 태어났다. 11명의 형제자매 중 6남.

중학교까지 오이타에서 마친 후 1938년 도쿄(東京)로 가 낮에 기계공장과 인쇄공장에서 일하고 밤에 도쿄시립상업학교에 다녔다. 1943년 메이지(明治)대 전문부 정치경제학과에 입학했다.

대학 졸업 후 고향으로 돌아와 어촌청년동맹, 오이타 현 노동조합 등에서 일하다 1955년 오이타 시의원에 당선되면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1972년 일본사회당(1996년 사회민주당으로 개명) 소속 중의원 의원으로 당선된 뒤 8선을 했다. 일본사회당은 제2차 세계대전 후 비공산당 계열의 합법 사회주의 세력이 모여 만든 단체다.

1995년 8월 식민지배와 침략을 사죄한 무라야마 담화를 발표해 한일 관계가 미래지향적으로 나아가는 데 크게 기여했다. 1999년 12월에는 초당파 방북단장으로 북한을 방문해 북-일 국교정상화 교섭 재개의 길도 열었다.

76세인 2000년에 정계를 은퇴했다. “몸도 한계에 왔고 머리 회전도 예전만 못하다”고 은퇴 이유를 들었다. 당시 그보다 더 나이가 많은 의원도 있었다는 점에서 ‘아름다운 퇴진’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정계를 은퇴한 뒤에도 일본 정치인의 망언, 무라야마 담화와 고노 담화 부정 세력 등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한편 그는 2003년 개봉된 영화 ‘8월의 가리유시’에 깜짝 출연하기도 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오키나와(沖繩)에서 연인과 두 다리를 잃고 깊은 슬픔을 안은 채 살다가 죽음을 앞둔 노인으로 열연했다. 영화 촬영 소감에 대해 “좋은 영화 제작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향해 많은 전문회사가 협력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감동했다. 남을 밟고서라도 저만 올라가려는 정치세계와는 너무 달랐다”고 말했다.

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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