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초 정부 출범 초기 임기 4년 가운데 2년 정도 남은 양건 감사원장의 거취를 놓고 청와대는 박 대통령이 언급한 ‘국정철학 공유’ 원칙에 따라 교체를 검토했다. 그러나 헌법에 보장된 임기를 지키지 않는다는 비판이 야당 등에서 나오자 정치적 부담을 느껴 임기를 보장해주기로 했다. 하지만 양 원장이 임기를 남긴 상태에서 26일 자진 사퇴 형식을 취하며 물러나면서 청와대의 ‘감사원장 임기 보장’은 공언(空言)이 돼버렸다.
양 원장의 사퇴로 출범 6개월이 갓 지난 박근혜 정부는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인사 파동’의 굴레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는 부담을 안게 됐다. 각종 언론과 전문가들은 취임 6개월을 맞은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평가하면서 외교와 북한 문제에 대해서는 후한 점수를 줬지만 가장 큰 문제는 인사였다고 입을 모았다.
우선 취임을 전후해 발표한 국무위원 인사는 곧바로 박 대통령의 골칫거리가 됐다.
부동산 투기, 해외계좌 보유 등 각종 의혹이 난무한 가운데 김용준 국무총리 후보자를 비롯해 황철주 중소기업청장 내정자, 김학의 법무부 차관, 김병관 국방부 장관 후보자, 한만수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 등이 줄줄이 낙마했다. 미국 시민권까지 버리고 고국에 봉사하겠다고 찾아온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는 미국 중앙정보국(CIA) 연루설 등 루머에 시달리다 보따리를 쌌다. 이 때문에 부실한 사전 검증 시스템도 비판의 도마에 올랐다.
민주당 등 야당은 ‘고집불통 수첩인사’, ‘깜깜이 인사’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결국 박 대통령은 4월 12일 당시 민주당 지도부 등을 청와대로 초청해 만찬을 하는 자리에서 잇단 장차관급 낙마 사태에 대해 “심려를 끼쳐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사과해야 했다.
외교안보 분야에서 점수를 땄다가 곧바로 인사 사고로 까먹는 상황이 벌어지곤 했다. 4월 첫째 주 41%까지 떨어졌던 박 대통령 지지율은 5월 초 방미를 계기로 56%까지 치고 올라갔다. 하지만 윤창중 당시 청와대 대변인의 해외 여성 인턴 성추행 의혹 사건이 터지면서 5월 셋째 주에는 51%까지 빠졌다. 윤 대변인은 즉각 사퇴했지만 한미 정상회담 등의 성과는 묻혀버렸다.
공공기관 인사는 더 큰 문제다. 주요 공공기관들의 기관장 선임 절차는 6월 이후 대부분 개점휴업 상태다. 올여름 전력난의 근본 원인을 제공했던 한국수력원자력은 사장 공백이 3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공공기관 사장 140여 명의 인선이 올스톱돼 있다.
전문가들은 6개월째 계속되는 인사 사고의 해법은 박 대통령 자신에게서 찾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정치학)는 “박 대통령은 최근 ‘비정상의 정상화’를 말했다”며 “이 말대로 인사 문제도 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 원장의 사퇴 요인 중 하나로 거론되는 장훈 중앙대 교수의 감사위원 선임 문제가 비정상의 사례라고 김 교수는 봤다. 청와대는 지난 정부에서도 장 교수처럼 대선캠프에서 일했던 사람을 감사위원으로 선정했는데 무슨 문제가 되느냐고 했지만 바로 그런 것이 ‘비정상’인데 이를 정상화할 생각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익명의 다른 전문가는 “그동안의 인사 실패에서 청와대가 얻은 교훈이 없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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