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대치 국면이 9월 정기국회를 목전에 두고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정국경색의 돌파구로 여겨지던 박근혜 대통령과 여야 대표 간의 회담 성사 분위기도 방식과 의제를 놓고 서로 평행선을 달리면서 좀처럼 조성되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은 27일째 서울광장에서 장외투쟁을 벌이고 있고, 새누리당은 국회로 돌아오라고 비판을 하고 있다. 27일 여야의 최고지도자인 당 대표들을 만나 그들의 고민과 해법을 들여다봤다.
◆황우여 새누리 대표
靑3자회담 거부로 리더십 ‘흠집’ 野양자회담 고수해 정치적 소외 “여야 대표 먼저 만나 해법 찾아야 일단 9월 국회부터 정상화 필요”
“나는 정치 초단이야.”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는 27일에도 그랬다. 서울 여의도 당사 6층 대표실에서 만난 황 대표는 ‘별명이 어당팔(어수룩해 보여도 당수가 팔단에 가깝다는 것을 빗댄말)인데, 경색된 정국의 해법을 제시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특유의 웃음을 지으며 너스레를 떨었다. 부드러운 성품 때문에 대치 정국에서도 늘 웃고 다녀 당내에서 ‘실없어 보인다’는 핀잔을 자주 듣는다. 잠시 뒤 그는 “아휴∼. 다음 수(手)를 찾아야 하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사실 민주당 장외투쟁 국면에서 황 대표의 정치적 위상은 꼬여버렸다. 지난달 27일 여야 대표 회동을 제안하고 실무협상까지 벌였지만 민주당 김한길 대표가 이달 3일 박근혜 대통령과의 양자회담을 제안하면서 공중에 붕 뜬 신세가 되어 버린 것. 게다가 사흘 뒤 박 대통령은 여야 대표와 원내대표까지 포함한 5자회담을 제안했다. 전날 대통령과 여야 대표가 참여하는 3자회담을 수정 제안했던 황 대표로서는 머쓱하게 됐다. “김 대표가 여야가 해결하자고 치고 나와야 (내가) 룸(공간)이 생기는데 대통령과 직거래하겠다고만 하면….” 황 대표는 아쉬움을 나타냈다.
일각에선 황 대표가 지난해 5월 선출 이후 최대의 리더십 위기를 맞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그렇다고 집권여당의 대표가 ‘샌드위치’ 신세를 한탄하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 ‘그래도 해법이 있지 않느냐’는 질문이 이어지자 황 대표는 “당대당’으로 해결을 해야 해요. 여야 대표 회동이 우선이에요”라고 답했다. 김 대표가 박 대통령과의 양자회담을 제안한 3일 이전의 단계로 ‘원상회복’을 시키자는 얘기였다. 그래야 꼬인 정국경색의 스텝을 풀고 새롭게 발을 맞출 수 있다는 논리였다.
황 대표는 “야당이 대통령을 만나면, 대통령은 여당 대표와 회동을 하고, 다시 여야 대표가 의논을 해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면서 “입법권이 있는 여야가 국회에서 담판을 짓고 정부에 요구하는 것이 선진정치의 모습”이라고 했다. “한 번 해서 안 되면 되게 하는 것이 당 대표들의 역할인데 왜 10년 전 또는 30년 전의 구정치로 돌아가려고 하느냐”고 한탄하기도 했다.
황 대표는 박 대통령과 김 대표의 양자회담이 나쁜 선례가 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모양새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골치 아픈 일이 생길 때마다 장외투쟁으로 나가고 다시 청와대와 회담하는 관례가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김 대표가 황 대표의 바람대로 다시 여야 대표회담을 받아들일 가능성은 낮다. 민주당의 장외투쟁이 이뤄지더라도 최소한 9월 정기국회를 정상화시키면서 다른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얘기다.
당 일각에선 여야의 대치 정국이 10월 재·보궐선거에서 국민의 평가를 받고 나서야 끝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황 대표는 “내가 혈혈단신으로 여기(당 대표)까지 온 것도 사심 없이 원칙을 지켰기 때문”이라며 “당대당으로 해결하는 것이 정당정치의 기본”이라고 말했다.
고성호 기자 sungho@donga.com
◆김한길 민주당 대표
先양자회담-後다자회담 역제안
“국정원 도움 안받았다는 말 믿어” 장외투쟁 속 대화에도 강한 의지 일부 초선의원 단식투쟁 말려
민주당 김한길 대표가 27일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 천막당사에서 ‘노숙투쟁’을 선언했다. 동시에 박근혜 대통령이 전날 제안한 ‘민생 관련 5자회담’에 대해 먼저 양자회담을 갖고 국가정보원 정국의 해법을 찾은 뒤 대통령이 제안한 여야 다자회담에서 민생을 논의하자고 역제안했다. 투쟁 수위를 한 단계 끌어올리면서도 박 대통령에게 다시금 정국 해법의 공을 넘긴 것이다.
김 대표는 천막당사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박근혜 대통령의 생각에 대한 생각’이라는 글을 발표하면서 다음 달 4일 박 대통령이 러시아와 베트남 순방길에 오르기 전에 답변을 줄 것을 요구했다.
김 대표는 우선 “민생을 위한 대통령과 여야 지도부 회담은 좋다”면서도 “먼저 민주당이 제안한 대통령과 민주당 대표의 양자회담에서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결론을 내고, 이어 대통령이 제안한 여야 다자회담에서 민생을 의논한다면 두 회담 모두 국민과 국가를 위해 바람직한 자리가 되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특히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의 잦은 만남은 국민이 바라는 바”라며 “민주당과 저는 대통령 알현을 앙망(仰望)하며 광장에 천막을 친 게 아니다”고 강조했다. “대통령과 야당 대표의 만남은 서로가 정국의 정상화라는 목적을 갖고 만나는 것”이라고도 했다.
박 대통령이 ‘지난 대선 때 국정원에 도움을 청하거나 국정원을 활용하지 않았다’고 한 데 대해서는 “믿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도 “그러나 대선을 전후해 있었던 헌정 유린 사건들에 대한 진상을 규명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박 대통령의 생각이라면 헌법을 준수하겠다고 국민 앞에 약속한 대통령으로서는 타당하지 않은 인식”이라고 했다.
김 대표는 이날부터 천막당사에서 노숙투쟁에 돌입했다. 그는 “집사람에게 장기외박 허락을 득했고 아침에 샤워하지 않아도 되게끔 머리도 짧게 깎았다”며 바짝 올려 친 헤어스타일을 소개하면서 투지를 다졌다. 김 대표가 한뎃잠을 자는 것은 정치를 시작한 뒤 처음이라고 한다.
김 대표의 노숙투쟁 선언과 박 대통령을 향한 ‘선(先)양자회담-후(後)다자회담’ 역제안은 당내 결속을 도모하면서 여권 압박 수위를 높이기 위한 다목적 카드로 풀이된다. 당내에선 당 대표가 솔선수범해 노숙투쟁에 나섬으로써 정부 여당에 대한 경고 강도를 높이는 한편 느슨해졌던 긴장감을 다시 불어넣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당 관계자는 “다음 달 2일 정기국회 개회식에 민주당은 참석할 것”이라며 “국회를 파행하겠다는 게 아니라 호락호락하게 정부 여당이 짜놓은 시간표대로 움직이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당내 강경파는 당 지도부의 원내외 병행 투쟁이 미적지근하다며 정기국회 보이콧을 요구하고 있다. 몇몇 초선 의원은 김 대표를 찾아 “단식을 하겠다”고도 했지만, 김 대표는 “길게 가야 한다. 내가 길을 만들어 주겠다”며 만류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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