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동 꺼! 반칙운전/‘분통 터지는 도로’ 르포]④ 판교 테크노밸리 일대
불법주차 차량 버스정류장 점령
왕복 8차로 1.4km 구간 양쪽 끝에 불법 주차 차량이 가득 찼다. 인근 이면도로는 주차장이 된 지 오래다. ‘지각’한 승용차 한 대가 주차 공간을 찾지 못하고 인근을 빙빙 돌다가 버스 정류장 앞에 차를 슬며시 세웠다. 개발도상국 구도심의 풍경이 아니다. ‘한국의 실리콘밸리’를 꿈꾸는 첨단 연구개발 단지인 경기 성남시 분당구 삼평동 판교 테크노밸리 일대의 23일 오전 모습이다.
○ 주차장으로 변한 ‘한국의 실리콘밸리’
이날 동아일보 취재팀이 찾은 판교 테크노밸리는 출퇴근 차량의 불법 주차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테크노밸리 중심인 ‘유스페이스’ 빌딩 인근 대왕판교로에는 오전 7시부터 차가 들어차기 시작해 오전 8시 반경에는 판교요금소부터 판교글로벌R&D센터까지 차량이 가득 찼다. 차로가 좁아지는 지점에도 주차 차량이 길을 막고 있어 통행 차량끼리 뒤엉키는 모습이 곳곳에서 보였다. 버스는 정류장을 점령한 불법 주차 차량 탓에 도로 한복판에서 승객을 태우고 내렸다.
오후 6시 반경부터는 퇴근 차량이 몰려 정체가 시작됐다. 테크노파크공원 인근 판교나들목(IC) 방면 대왕판교로의 왕복 8차로 양쪽에는 주차 차량이 각각 1개 차로를 가로막고 있었다. 왕복 6차로로 좁아진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겨우 100m를 통과하는 데 5분가량 소요됐다. 회사원 박상헌 씨(36)는 “차가 줄곧 잘 뚫리다가 테크노밸리에 이르면 항상 막힌다”고 말했다.
○ 불편한 대중교통 주차난 주범
불편한 대중교통은 주차난의 주된 원인으로 지목된다. 판교 테크노밸리에 입주한 SK케미칼 NHN 등 기업 634곳의 근로자는 현재 3만800여 명. 대부분 서울 및 경기 남부 지역에서 통근한다. 주거지와 판교 테크노밸리를 연결하는 버스 노선은 마을버스를 제외하고 총 19개다. 출퇴근 시간인 오전 7∼9시에 수송할 수 있는 승객이 9200여 명에 불과하다. 분당 정자역과 강남역을 운행하는 신분당선은 다른 지하철 노선과 환승이 어려워(지하철 2호선 강남역과 3호선 양재역에서만 환승 가능) 상대적으로 이용자가 적다. 입주 기업 직원 상당수가 자가용 통근을 선택하는 이유다.
그런데도 주차 공간은 부족하다. 건물 지하마다 부설주차장이 설치돼 있지만 입주 기업에 할당된 주차 공간은 분양 면적 165m²(약 50평)당 1면뿐이다. 직원은 3명 중 2명꼴로 월 15만∼30만 원을 내고 유료주차장을 이용해야 한다. 그나마 테크노밸리 일대에서 유일한 주차 빌딩인 ‘판교엠타워’ 빌딩 2∼5층에 마련된 주차 공간 200면은 이미 장기 이용 신청이 밀려 주차장 입구에 “더이상 장기주차 신청을 받지 않는다”는 안내문이 걸려있었다. 본래 주차 용지(주차빌딩을 지어야 하는 공간)로 지정된 2만1706m² 중 1만8583m²(85.6%)는 아직 공터로 남아있거나 아예 분양조차 되지 않아 언제 주차장으로 운영될지 불투명하다.
성남시는 주차난 해소를 위해 지난해 12월부터 미분양 공터 1만1826m²를 빌려 차량 1000여 대가 들어설 수 있는 주차장을 임시 개방한 데 이어 10월 주차 공간 800여 면을 추가할 계획이다. 정철모 성남시 교통기획과 주차관리팀장은 “주차 공간이 확보되기 전까지는 불법 주차 단속을 유보할 계획이지만 앞으로 보행자에게 불편을 주는 버스정류장 및 횡단보도 인근 주차 차량은 집중 단속하겠다”고 말했다.
성남=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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