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KT 혜화지사 등 구체적 습격목표 정해”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29일 03시 00분


[통진당 10명 내란음모 혐의]
국정원이 수사 중인 이석기 의원 등 내란음모 혐의 내용은

국가정보원이 수원지검 공안부(부장 최태원)의 지휘를 받아 28일 주거지와 사무실을 압수수색한 이석기 통합진보당 국회의원 등이 받고 있는 주요 혐의는 ‘내란음모’다. 이 의원 등은 비밀조직을 결성하고, 북한이 한국을 침범했을 때 철도는 물론이고 경찰서 파출소 및 무기저장소, 유류 및 통신시설 등을 습격하는 준비를 하기로 공모한 혐의를 받고 있다.

○ 민혁당 잔존 세력으로 비밀조직 결성

국정원은 2010년부터 3년간 이들의 내란음모 혐의에 대해 치밀한 내사를 벌여왔다. 국정원은 1992년 결성된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이 1997년 해체된 이후에도 조직 재건활동을 벌이는 정황을 내사하던 끝에 그 중심에 이 의원이 있다는 단서를 포착하고 집중 추적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대법원은 2000년 민혁당을 반국가단체로 확정 판결한 바 있다.

공안당국은 이 의원이 옛 민혁당 관계자들을 모아 ‘RO(Revolutionary Organization)’라는 비밀조직을 결성하고 2004년부터 서울과 경기지역에서 정기적으로 모임을 연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규모는 130명 안팎으로 연령은 주로 3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이며 대부분 과거 민혁당에서 활동했던 주사파들인 것으로 알려졌지만 현재 학생운동 조직과 연계돼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 의원은 민혁당사건으로 2003년 3월 징역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지만 노무현 정부의 특별사면으로 가석방됐다. 이 의원은 당시 중간 간부급이었지만 검찰 수사로 민혁당이 해체되면서 이 비밀조직의 사실상 지도자급 역할을 맡게 됐고 체제 전복 계획까지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 철도, 통신, 유류 등 국가기간시설 습격 계획

공안당국은 이 의원이 지난해 19대 총선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된 뒤 5월에 열린 모임에서 “북한이 전쟁을 일으키면 이를 돕기 위해 남한 내 세력들이 파출소나 무기저장소 등을 습격해 북한을 도울 준비를 할 것”을 주문한 녹취록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이 습격 목표로 삼은 시설은 철도, 통신, 유류저장고 등 국가기반시설 전 분야에 걸쳐 있다. 철도는 노선을 특정하지는 않았지만 전쟁이 발발하면 군수물자와 민간인 이동을 차단하기 위해 경부선과 호남선 등 주요 철도를 목표로 삼은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전국의 통신시설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큰 KT의 혜화지사와 분당 인터넷데이터센터(IDC)도 습격 대상에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혜화지사는 인터넷이 해외로 연결되는 관문 역할을 하는 곳이다. 혜화지사가 타격을 입으면 전국의 인터넷 속도가 크게 느려진다.

분당 IDC 역시 여러 기업과 기관의 인터넷 홈페이지를 운영하기 위한 데이터 서버와 내부 전산망 운영을 위한 설비가 설치돼 있어 파괴될 경우 해당 기업 업무가 마비될 수 있다. 이 두 곳이 공격을 받으면 국가 통신기능의 상당 부분이 마비될 수 있는 것이다. 국정원은 이들이 국내 통신시설을 폭파하기로 계획한 내부 문건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조직은 또 조직원들에게 전국에 퍼져 있는 미군부대의 위치와 규모 및 부대 인력 등을 파악해 보고하도록 한 것으로 전해졌다. 수도권에 석유, 가스 등을 공급하는 경기 평택물류기지 역시 습격 목표로 선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 의원이 구축한 조직은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가 2011년 수사한 ‘왕재산 간첩단사건’과 비슷한 형태로 운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왕재산은 북한 노동당 225국(옛 대외연락부)의 지령에 따라 국내 주요시설 타격 등을 목표로 운영된 조직이다. 이 의원도 왕재산 조직처럼 조직원을 매우 엄격히 모집했고 모임을 열 때도 산악회 모임으로 위장까지 하면서 보안을 철저히 유지한 것으로 전해졌다.

○ “유사시 대비해 총기도 준비”

녹취록에서는 또 “유사시에 대비해 총기를 준비해야 한다”는 발언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이를 위해 조직 내부에서는 사제 총기를 만드는 방안도 논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사실상의 군사반란에 준하는 수준의 발언으로 공안당국은 이 녹취록이 내란음모 혐의를 입증하는 결정적인 증거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국정원은 이날 집행한 압수수색 영장에 올해 5월 서울 모처에서 민혁당 후신 조직원 130여 명이 비밀 회합을 갖고 경기 남부지역의 항만, 철도, 통신, 유류시설 등을 파괴해 북한이 내려올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고 모의했다는 혐의를 구체적으로 적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안당국 관계자는 “녹취록 등을 불법 감청한 것이 아니고 합법적 과정을 통해 입수한 것이어서 법원에서도 증거로 인정할 것”이라며 “공안사건은 구체적인 증거가 없으면 압수수색을 나갈 수 없다. 법원도 현역 의원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해 줄 만큼 확실한 증거가 확보된 상태”라고 말했다. 공안당국은 이들에 대해 내사 과정에서 확보한 증거를 토대로 국가보안법상 반국가단체 구성, 북한 찬양, 이적동조 등의 혐의도 함께 적용했다.

유성열·장선희·정호재 기자 ry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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