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위기 ‘리먼사태’ 5년]<상>한국, 수출로 위기 넘긴 모범생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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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주요국과 비교해보니
‘가계부채 출구찾기’ 숙제 남아

《한국이 2008년 ‘리먼 사태’ 이후 경제 회복 속도가 주요 20개국(G20) 가운데 6번째로 빨랐던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경제가 신속하게 회복되는 과정에서 민간부채가 늘면서 부채안정성은 G20 평균보다 떨어지는 12위에 그쳤다. 특히 세계 경제의 ‘성장엔진’으로 불리는 중국은 부채안정성 면에서 확연한 꼴찌를 차지했다. 경제 회복 속도는 4위에 오를 정도로 고속 성장을 이뤘지만 막대한 거품을 동반한 ‘위험한 성장’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 때문에 만일 ‘리먼 사태’ 같은 위기가 다시 발생한다면 그 대상은 중국이 될 것이라는 경고도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당국의 규제와 감시가 느슨해 부실이 큰 비(非)은행 금융회사인 ‘그림자 금융’이 위기의 뇌관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본보와 우리금융경영연구소는 ‘리먼 사태’ 5주년을 맞아 한국 경제의 위기 극복 현황과 과제를 2회에 걸쳐 보도한다.》

‘신흥국 위기의 승자.’

지난달 말 월스트리트저널이 한국을 표현한 말이다. 한국을 경제 상황이 위험한 나라로 앞다퉈 보도했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 차이가 크다.

올해 2분기 말 기준으로 한국의 외환보유액 대비 단기 외채 비율은 36.6%로 나타나 80%에 육박했던 2008년에 비해 크게 하락했다. 외신들의 태도 변화는 한국 경제가 위기를 빠르게 극복하며 강하게 거듭난 데 따른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G20의 회복력과 부채안정성을 분석한 결과 실제로 한국은 상대적으로 위기를 빨리 극복한 것으로 확인됐다.

○ 정부-기업 공조로 ‘쌍끌이 효과’

윌리엄 페섹 블룸버그 칼럼니스트는 얼마 전 “한국을 보면 경상수지 흑자를 이어 가고 있는 나라가 위기 상황에서 얼마나 유리한지를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한국 경제가 위기에서 회복한 것은 삼성전자, 현대·기아자동차 같은 대표 기업의 비약적 성장으로 확인할 수 있다.

‘업황 회복, 실적에 대한 기대가 너무 높은 것은 아닌지?’ 2007년 12월에 나온 삼성전자에 대한 한 증권사의 보고서 제목이다. 당시 삼성전자의 목표 주가는 63만 원대였다. 하지만 지난달 30일 현재 삼성전자의 주가는 136만8000원이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반도체 시황에 영향을 받지만 가능성이 큰 기업’이 ‘진짜 강한 기업’이 된 것이다.

최근 미국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SA)가 미국인과 유럽을 대상으로 정보기술(IT)기업 브랜드 선호도를 조사한 결과에서도 삼성전자는 소니와 마이크로소프트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현대·기아차는 올해 상반기 세계 시장에서 368만 대를 판매해 5위를 차지했다. ‘싸면서 품질도 괜찮은 차’라는 평가는 이제 한국인만의 생각이 아니다. 1986년 미국 시장에 진출한 이후 “두 개의 파이프가 연결된 현대차를 우리는 손수레라고 부른다”라는 식의 혹평에 시달렸던 현대차의 과거를 생각하면 놀라운 발전이다.

정부 역할도 컸다.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금융산업실장은 “정부는 신용경색을 막기 위해 금리를 내리고 미국과 통화스와프를 체결해 위기 극복에 일조했다”고 평가했다.

우리금융경영연구소의 분석 결과 한국 경제의 회복력은 0.71로, G20 가운데 6위였다. 회복력이 1이라는 것은 금융위기 이전과 동일한 수준으로 경제가 성장했다는 뜻이고, 1을 넘으면 그보다 더 많이 성장했다는 의미다. 회복력은 2004∼2008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과 금융위기가 발생한 다음 연도인 2009년부터 2013년까지 GDP 성장률(2013년은 전망치)을 바탕으로 산출했다.

회복력이 가장 높은 나라는 인도네시아(1.04)였고 사우디아라비아(0.90) 인도(0.70) 중국(0.77) 등 신흥국이 뒤를 이었다. 인도네시아와 인도는 미국이 푼 돈이 대거 유입되면서 경제가 빠르게 회복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최근 미국이 조기 양적완화 축소에 나서면서 다시 어려움에 빠져들고 있다.

○ 늘어난 민간 부채는 부담

부채안정성에서 한국은 ―5.6을 나타내 12위에 그쳤다. G20 평균은 ―3.6이다. 위기를 딛고 빠르게 회복했지만 그 과정에 ‘부채’라는 비용을 치른 것이다. 부채안정성은 민간 부채를 기준으로 산출했다. 위기가 터지면 정부가 적극 정책을 펴야 하는 만큼 정부 부채를 포함한 총부채가 아닌 민간 부채를 기준으로 삼았다.

한국의 부채안정성이 낮게 나온 것은 경기 부양을 위해 부동산 규제를 완화하는 과정에서 가계 부채가 증가했기 때문이다. 생계형 부채가 늘어난 것도 영향을 미쳤다. 2005년 150.2%였던 민간 부채 비율은 지난해 말 193.3%로 크게 뛰었다.

중국은 부채안정성이 무려 ―52.7로 나타나 꼴찌를 차지했다. 김홍달 우리금융경영연구소장은 “중국 정부는 연간 8% 이상의 성장세를 이어 가지 않으면 실업률이 치솟는 등 문제가 심각해질 것을 우려해 과다하게 돈을 풀어 부동산 거품 같은 부작용을 초래했다”며 “이는 부채안정성을 극단적으로 해치면서 성장을 추구한 결과다”라고 지적했다.

손효림·박용 기자 aryssong@donga.com

:: 리먼브러더스 사태 ::

2008년 9월 15일 미국 4위의 투자은행(IB)이던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하면서 촉발한 글로벌 금융위기를 말한다. 미국의 대표 IB 중 한 곳이었던 리먼브러더스의 파산은 비우량 주택담보대출(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이 원인이었다. 리먼브러더스는 모기지를 담보로 만든 부채담보부증권(CDO)을 전 세계에 마구 팔았는데 미국의 주택 버블이 꺼지자 모기지에 관련된 투자 손실을 감당하지 못했다. 리먼브러더스 파산 후 전 세계에 신용경색이 이어졌고, 금융시장이 한동안 휘청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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