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수수색 등 위급할땐 USB 부숴서 삼켜라” 증거인멸 교육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3일 03시 00분


■ 이석기가 이끈 RO의 실체

2일 국회에 제출된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요구서는 이 의원이 이끄는 RO(Revolutionary Organization·혁명조직)를 북한의 대남혁명론을 그대로 따르는 ‘북한 추종 지하혁명조직’으로 규정했다. RO는 까다로운 기준으로 ‘주사파’ 조직원을 선별한 뒤 단위조직을 결성하고 철저한 상명하복과 보안 시스템으로 조직을 운영해 온 것으로 파악됐다. RO 조직원들은 보안교육에서 “압수수색 등 긴급 상황이 발생하면 USB를 부숴서 삼키라”는 지시까지 받았다고 한다.

○ 주체사상으로 남한사회주의 혁명 시도

체포동의요구서에 따르면 RO는 산하 조직원들에게 북한의 ‘주체사상’을 따르는 단체라는 사실을 명확히 주지시켜 왔다. 조직원 가입식에서는 “우리의 수(首)는 누구인가”라고 묻고, 신규 조직원은 “비서 동지(김정일)입니다”라고 답변하게 했다. 자신의 활동이 북한을 이롭게 한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사실 등을 근거로 당국은 RO가 국가보안법상 반국가단체나 이적단체로 규정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들은 △주체사상을 지도이념으로 남한사회 변혁운동을 전개하고 △남한의 자주·민주·통일 실현을 목적으로 하며 △주체사상을 심화·보급 전파한다는 3가지 항목의 단체강령을 만든 뒤 보안을 위해 신입 조직원에게 구두(口頭)로 전달했다. 공안당국은 여기에 포함된 ‘자주·민주·통일’은 북한이 1970년 5차 당대회 이후 확정한 ‘대남투쟁 3대 과제’를 그대로 가져온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 의원은 이 강령을 토대로 올 3월 북한이 정전협정 백지화 선언을 한 직후 조직원들에게 ‘전쟁 대비 3가지 지침’을 시달했다. 비상시국에 연대할 조직을 빨리 꾸리고, 광우병 사태처럼 대중을 동원한 선전전을 실시하며, 미군기지나 전기시설 등 주요 시설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라는 것이다.

○ 조직원 까다롭게 선별…철저한 상명하복 체계

RO는 조직원을 까다롭게 선별해 받아들인 것으로 파악됐다. 일단 세포책이 대학이나 청년운동단체에서 ‘학모(학습모임)’라고 불리는 소모임을 조직한 뒤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 등 여러 교재를 이용해 사상학습을 시키도록 했다. 여기서 주체사상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을 모아 따로 ‘이끌(이념서클)’을 조직하는 방식이다. 이 모임에선 ‘김일성 회고록’과 ‘김일성 저작집’ 등으로 심화학습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끌’ 지도책과 다른 RO 조직원 1명의 추천이 있으면 RO에 자기소개서와 결의서를 제출할 수 있게 된다. 이후 상부의 승인이 떨어지면 해변이나 산악지역에 있는 민박집 등에서 수련회를 열어 가입 승인을 얻게 된다.

신입 조직원들은 가입 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R(혁명)가”라고 대답하는 의식을 거친다. RO는 또 이들에게 북한의 혁명가요인 ‘동지애의 노래’ 등을 제창하게 했다.

RO는 이렇게 받아들인 조직원들이 3∼5명으로 구성된 단위조직을 만들게 한 뒤 총책→상급 세포책→하급 세포책→최하급 세포원 등으로 이어지는 지휘체계를 갖추도록 했다. 공안당국은 RO 조직원들이 조직의 지시사항을 거부할 수 없는 엄격한 위계질서를 갖추고, 개인의 사생활까지 통제받았던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실수를 저지를 경우 경고 조치를 하거나 노역을 하게 하는 등 북한의 ‘인민재판’을 그대로 따랐던 것으로 알려졌다.

○ “보위(保衛)에는 바늘 틈 하나 흥정할 겨를 없다”


RO는 철저한 보안 유지로 조직의 실체를 숨겨 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자신들의 행동이 위법하다는 걸 인지하고 있었다는 정황이라고 공안당국은 판단하고 있다.

RO는 수사당국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통신 보안, 컴퓨터 보안, 문서 보안, USB 보안, 외부활동 보안 등 보안수칙을 세부적으로 설정해 조직원들이 따르도록 했다. 보안수칙에는 △조직 관련 사항은 반드시 공중전화나 비폰(비밀 휴대전화) 사용 △가급적 종이 사용 금지 △조직과 관련된 내용은 되도록 암기 등이 포함돼 있었다.

RO를 이끈 이석기 의원은 5월 10일 경기 광주시 모임에서 조직원 기강 해이와 보안 상태를 지적하며 모임을 10분 만에 해산시키기도 했다. 그는 이틀 뒤인 5월 12일 서울 마포구에서 소집한 비밀모임에서 “여기 동지들 전부 요시찰 대상”이라며 “보위에 대해서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그 누구도 보위의 문제에 대해서는 타협할 권리도 없고 단지 지켜야 할 숭고한 의무만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최창봉·권오혁 기자 cer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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