쌩하게 달리는 회색 아반떼 차량의 번호판을 향해 경찰의 이동식 속도측정기가 자동으로 레이저를 쐈다. 시속 61km.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 제한속도인 시속 30km의 두 배가 넘는 속도다. 8월 27일 오후 서울 구로구 신도림동 신미림초등학교 앞. 왕복 6차로 약 400m 구간을 지나는 차량 대부분이 제한속도를 초과했다. 스쿨존 사고가 잇따르는 가운데 개학을 맞아 동아일보 취재팀이 찾은 초등학교 앞은 여전히 어린이들의 목숨을 위협하는 ‘반칙운전’ 사각지대였다.
9월은 여름방학 동안 줄어든 스쿨존 교통사고가 다시 증가하는 시기다. 이 때문에 경찰청은 8월 19일부터 9월 30일까지 전국 스쿨존에서 교통법규 위반 차량 집중단속에 나섰다. 지난해 스쿨존에서 발생한 교통사고는 총 511건. 이로 인해 13세 미만 어린이 6명이 숨지고 528명이 부상했다. 올해도 벌써 4명의 어린이가 스쿨존 사고로 사망했다. 해마다 안타까운 어린 생명이 목숨을 잃어도 일반 운전자들의 스쿨존 안전의식은 아직도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 8월 27일 취재팀은 경찰의 스쿨존 단속 현장을 동행했다.
신미림초교 앞은 도로가 넓어 특히 과속이 많은 구간이다. 이날 구로경찰서 교통안전4팀이 낮 12시부터 오후 3시까지 성락교회 방향 2차로에 이동식 측정기를 설치하고 과속차량을 단속했다. 3시간 동안 오차범위를 고려한 단속 기준인 시속 46km를 넘겨 적발된 차량만 40대. 이 차량 소유주들에게는 속도위반 범위에 따라 과태료가 부과된다. 단속에 걸리지 않은 차들도 제한속도를 지키는 모습을 찾기 어려웠다.
학교 입구의 횡단보도에서는 초록색 보행자 신호가 끝날 무렵이나 시작되자마자 급하게 뛰어서 도로를 건너는 어린이들이 자주 눈에 띄었다. 과속으로 달리던 차가 갑자기 튀어나온 아이와 자칫 부딪칠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이다. 스쿨존을 과속으로 달리면서 단속만 피하려는 얌체 같은 ‘반칙운전’도 목격됐다. 측정기가 쏘는 레이저를 피하려고 차선에 바짝 붙거나 차로를 변경하는 것. 검은색 그랜저 1대와 택시 1대가 각각 이런 방법으로 단속을 피했다.
이날 오후 서울 강북구 수유동 인수초교 앞 왕복 4차로 550m 구간에서도 반칙운전이 속출했다. 스쿨존을 알리는 노면표시와 불법주정차 금지 표지판이 곳곳에 설치돼 있었지만 운전자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후 2시경 강북경찰서 교통안전4팀이 신호 위반 차량을 감시하기 시작한 지 15분여 만에 검은 승용차가 빨간불 신호를 무시하고 교차로를 지나다가 적발됐다. 스쿨존에서는 신호 위반, 보행자 보호의무 위반, 불법 주정차 등의 벌점과 범칙금이 모두 2배다. 운전자 김모 씨(41)에게 벌점 30점과 범칙금 12만 원이 부과됐다. 도로 중앙선을 넘어 좌회전한 김모 씨(66)에게도 벌점 30점과 범칙금 6만 원이 부과됐다.
스쿨존은 처벌 수준이 높아 위반으로 적발된 운전자들의 저항도 강하다. 인수초교 건너편 도로에 1.5t 냉동탑차를 세워 주차 위반으로 단속된 운전자 조모 씨(32)는 경찰이 발부한 범칙금 고지서를 찢으려 하며 거세게 항의했다. 단속에 나선 경찰들은 “범칙금이 수십만 원에 이르는 선진국에 비해 턱없이 낮은 수준”이라며 처벌을 더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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