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계원은 (전기 스위치를 찾겠다고) 현장을 피신하여 밖으로 나왔으며 방 안에서의 총성을 신호로 중정 의전과장 박선호는 응접실에 대기 중이던 경호처장 정인형과 경호부처장 안재송을 사살했으며 수행비서관 박흥주 대령, 경비원 이기주, 운전사 유성옥 등은 주방에서 대기 중이던 경호실 특수차량계장 김용태, 경호관 김용섭을 사살하고 경호관 박상범에게 중상을 입혔다. 김재규는 화장실로 피신하는 차지철 실장에게 재차 쏘려고 방아쇠를 당겼으나 불발이 되자 쏘던 총을 버리고 다시 권총을 구하려고 정원까지 나와 박흥주 대령에게 총을 달라고 하였으나 실탄을 다 소모했다는 말에 다시 방으로 되돌아가다 마침 대기실에서 나오는 박선호를 복도에서 만나 박선호가 가지고 있던 38구경 리볼버 권총을 빼앗아들고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이때 화장실로 피신했던 차지철은 “경호원! 경호원!” 부르면서 나오다 김재규와 바로 마주치자 방구석에 있는 문갑을 잡고 피하는 자세를 취할 뿐이었다.’
다시 김계원 비서실장의 회고다.
‘“각하가 계신다! 불을 켜!” 어두운 복도에 스위치를 더듬거려 찾는 중에 불이 다시 들어왔다. 연회장 밖에서도 계속된 총성이 들렸다. 다시 돌아 들어온 연회장 안에서는 차 실장이 구석에 놓여있던 사방탁자 문갑을 잡아들고 다시 자신을 향해 총구를 겨누는 김 부장을 향해 결사적으로 저항했다. “김 부장….” 차 실장의 목소리는 애원하는 듯했다. 김재규의 총에 불이 붙으며 차 실장이 가슴을 맞고 쓰러졌다. 김재규는 다시 식탁을 돌아 신재순 양이 안고 있는 대통령 옆으로 다가와 대통령의 머리를 향해 1발을 발사하였다. 순간 대통령을 부축하고 있던 두 여인도 비명을 지르며 뒤로 일어나 물러섰다. 모든 것이 어두운 조명 아래에서 꿈처럼 미몽 가운데 순식간에 일어났다. 방구석에 쓰러져 있는 차 실장이 신음소리를 내자 누군가 들어와서 그에게 확인 사살을 했다. 밖에 요란하던 총소리도 그치고 김재규는 연회장 각 방을 들락거리며 총을 쏘아댄 자신이 도리어 공포에 떨며 당황하는 듯한 행동을 보였다. 얼굴은 새파랗게 질리고 눈은 완전히 정신이 나간 듯 초점이 없었다.’
김재규는 현관 밖에서 김 실장과 마주친다. 그러더니 “실장님! 각하 돌아가신 것을 최소 3일간은 절대 비밀로 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다시 김 실장의 증언이다.
‘김재규는 맨발로 아직 총을 쥔 채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말을 뱉었다. “(시신을) 이곳에서 절대 옮기지 말고 그대로 두어야 합니다.” “김 부장, 어떻게 각하까지 그렇게 했소?” 나무라는 조로 내가 말을 하였으나 그 소리는 작았고 무기를 쥔 그의 다음 동작을 알 수 없는 나로서는 참담하기까지 했다. “실장님, 이제 다 끝났습니다. 보안만 잘 부탁합니다.” (나는) 각하를 빨리 병원으로 모시려면 시급히 그의 시야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김 부장, 알았으니 빨리 가봐.” 누가 경호실 요원인지, 중정 요원인지 알 수 없었으나 사건 현장 부근 사람들은 대부분 중정 요원인 것 같았다. 경호실 요원은 그들에게 전부 사살된 듯했다. 만찬장에 쓰러져 계시는 대통령에게 다가가 보니 아직 호흡이 계셨다. “각하! 각하! 조금만 참으십시오. 얘들아! 이리 빨리 들어와, 어서 들어와!” 안가에 있던 중정 요원들에게는 각하에 대한 저격까지는 차마 미리 지시가 안 내려졌는지 내 목소리에 놀란 요원들이 뛰어 들어왔다. 그중 가까이 다가선 한 명에게 각하를 업게 하고 대통령이 타고 온 전용차로 모시게 해 대통령 전담 의료시설이 있는 육군병원으로 향하게 했다.’
김 실장이 병원으로 나선 그때, 김재규는 별채에서 식사를 하고 있던 정승화 참모총장에게로 갔다.
수사 발표 내용은 이렇다.
‘7시 43분경 김재규는 맨발에 와이셔츠 차림으로…황급한 모습으로 땀을 흘리며 별채 안으로 들어와 경비원으로부터 물 한 컵을 받아 마시고 나서 정 총장의 팔을 잡고 “총장, 총장, 큰일 났습니다” 현관 쪽으로 끌고 나가면서 “빨리 차를 타시오” 하는 말에 정 총장은 김재규에게 “무슨 일입니까” 묻자 김재규는 “차를 타고 가면서 이야기하자”고 했다. 이때 정 총장은 김재규가 어떤 기습을 받아 도망 나온 것으로 생각하고 승용차 뒷좌석 중앙부위에 탔는데…차중(車中)에서 정 총장이 “무슨 일입니까?” 다그쳐 묻자 “큰일 났습니다. 정보부로 갑시다” 하여 다시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 묻자 대답은 하지 않고 각하를 뜻하는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면서 저격당했다는 표시를 하였으며 (이를 본) 총장이 “각하께서 돌아가셨습니까?” 묻자 김재규는 “돌아가신 것은 확실하다” 대답했다. 김재규는 경호차가 따라오는지 수차 초조하게 확인하더니 “보안 유지를 해야 됩니다. 적이 알면 큰일 납니다” 말만 되풀이 강조할 뿐 “외부 침입이냐, 내부 일이냐?”는 정 총장의 물음에 “나도 잘 모르겠다” 대답하면서 보안 유지만을 거듭 강조했다. 승용차가 삼일고가도로를 향하고 있음을 의식한 정 총장이 “어디로 가는 것입니까” 묻자 김재규는 “정보부로 가는 것”이라고 하므로 정 총장은 만일에 작전의 필요 시 지휘에 용이하고 보호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여 “육본으로 갑시다” 하자 김재규가 갈까 말까 망설이자 앞자리에 앉은 박흥주 대령이 “육본으로 가지요” 하여 방향을 육본으로 향했다.’
이 대목에서 정승화 총장 본인의 증언(회고록)은 다음과 같다.
‘(안가에 도착해 김재규를 기다리며) 포도주를 마시며 시국 이야기를 했다. 주로 김정섭이 이야기를 하고 나는 듣기만 했다. 그때 몇 발의 총성이 들렸다. 먼 것 같기도 하고 가까운 것 같기도 하고 잘 분간이 되지 않았다. “이거 총소리 아니오?” “글쎄요. 총소리 같기도 하고….’ (나는) 총소리가 아닌 걸 잘못 들었다 생각했고 설사 총소리였다 하더라도 오발된 걸로 생각했지 다른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다. 김정섭도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알아보겠다며 직원을 부르더니 근처 파출소에 가서 오발사고가 있었는지 알아보라 시켰다. 그리고 다시 아까 하던 시국 이야기를 계속하는데 갑자기 김재규 목소리가 들렸다. “정 총장! 정 총장!” 다급한 목소리였다. 내가 앉은 자리에서는 사각(死角)이라 김재규가 보이지 않아 (나는) 밖으로 나갔다. “큰일 났습니다! 빨리 갑시다!” 주전자 꼭지를 입에 대고 벌컥벌컥 물을 마시던 김재규가 허둥대며 고함을 질렀다. 나는 만찬 중에 대통령이 급히 나를 부르는 줄로만 알았다. 인민군이 기습해온 것 같지는 않고, 정치적인 이유로 파출소가 습격당했다거나 하는 일이 아닐까 생각했다. …나는 대기 중인 김재규의 차를 탔다.’
그의 증언은 수사발표와 일치한다. 다만 정 총장은 “대통령이 돌아가셨다”는 김재규의 말에 “내부 소행이라면 차지철 말고는 다른 사람을 생각할 수 없었다”고 증언한다. 그러면서 “육본으로 가자”는 자신의 말에 김재규의 부관인 박흥주 대령이 찬성한 이유를 이렇게 추정한다.
‘나중에 추측건대, 그 부관(박흥주)은 남산으로 갔다가 충성심 강한 경호실 요원들이 중앙정보부에서 대통령을 죽인 걸 알고 몰려 들어오면 고스란히 앉아 당할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군 병력이 있는 육군본부로 가는 게 안전하지 않겠냐는 생각을 했을 터이고 게다가 내가 김재규와 함께 사건 현장 가까이에서 저녁 약속을 하고 함께 있었으니 모든 일을 나와 공모한 줄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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