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업무는 커피타기였지만… 실력으로 존재감 증명”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5일 03시 00분


■ 여성 첫 ‘기상청 2인자’ 조주영 차장

조주영 기상청 차장(55·여·사진)은 2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한반도에 접근할 것으로 예상됐던 제17호 태풍 ‘도라지’의 이동 경로와 규모를 파악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모습이었다.

그는 6급 특채로 기상청 근무를 시작했다. 1984년 7월이다. 이후 기상청 2인자이자 최고 전문가로 인정받기까지 30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 자신을 둘러싼 편견과의 싸움을 극복한 결과다.

임용되고 처음 맡은 일은 상사의 커피 타기, 사무실 정리, 전화 응대였다. 연구직 신분이었지만 허드렛일을 해야 했다. 조 차장은 “여성이라고 무시하는 분위기에 욱하는 마음이 자주 들었다. 그때마다 실력으로 내 존재감을 증명하겠다는 다짐을 했다”라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의 실력과 근성은 빛을 발했다. 1986년 서울 아시아경기 준비를 위한 태스크포스(TF)팀에 포함되자 42.195km의 마라톤 풀코스를 온도계를 들고 걸어서 완주했다. 코스의 기온환경을 점검하기 위해서였다. 남자도 쉽게 못하는 일을 해낸 그에게 상사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앞으로 조주영에게 잡무 시키려면 얘보다 일을 더 잘해야 해.”

그는 공보관 총괄예보관 예보정책과장 강원지방기상청장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어딜 가든 ‘여성 최초’라는 타이틀이 따라왔다. 그는 이처럼 승승장구한 비결에 대해 “새로운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았다”고 소개했다. 대부분의 여성 공무원이 평소 하던 일만 하려는 경향이 있지만 자신은 그렇지 않았다고 했다. 조 차장은 “기상분야를 위해 일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떤 분야에서든 일할 마음가짐과 준비가 되어 있었다”고 말했다.

조 차장은 최근 늘어나는 여성 후배들을 위해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여성이 업무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인정받으려면 업무에 대한 노력과 열정을 자기 주변에 입증해야 한다.”

그는 2000년대 초반 서해 무인도에서 공사장 인부들을 이끌고 기상관측소를 건설하던 시절을 예로 들었다. 처음엔 인부들이 “아줌마가 뭘 안다고 우리한테 이래라 저래라 하는 거야”라고 말했지만 조 차장의 성실성을 보고는 깔끔하게 공사를 마무리했다고 한다.

여성 고위직이 늘어나려면 여성에 대한 국가와 사회의 배려가 필요하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그는 과거 게임 중독에 빠졌던 외아들을 떠올리며 “일만 하다 보니 가정을 돌볼 새가 없어서 힘들었다. 여성이 고위직에 많이 진출하고 두각을 나타내기 위해선 일과 가정의 양립을 위한 양육, 교육 지원을 더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이철호 기자 irontig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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