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본부를 둔 국제 유대인 인권단체 사이먼비젠탈센터가 ‘독재자 마케팅’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이 센터는 성명을 내고 이탈리아 와인업체 ‘비니 루나르델리’가 생산한 와인에 대한 전 세계적인 판매 금지를 요청했다. 와인 병에 부착된 라벨이 문제였다. 라벨에는 나치 식으로 경례하는 히틀러의 모습을 비롯해 히틀러의 사인이 적힌 히틀러의 초상화 등이 담겨 있다. 센터는 “대학살을 자행한 나치를 마케팅 도구로 이용한 사업은 그 누구도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런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돈을 벌기 위해 피로 얼룩진 독재자의 이름까지 가져다 사업에 이용하는 마케팅은 점점 확산되는 추세다.
올해 1월 영국의 주류회사 ‘홀든스 브루어리’는 마오쩌둥(毛澤東)의 이름을 딴 ‘마오쩌 드렁크(Mao Ze Drunk)’라는 맥주를 판매했다. 회사 홈페이지의 제품 설명에는 ‘마오쩌둥에게 기쁨을 준 바로 그 맛’이라고 적혀 있다. 회사 관계자는 “판매 성적도 좋았다”고 밝혔다. 마오쩌 드렁크는 이 회사가 올해 선보인 ‘2013년 세계의 지도자들’이라는 월별 라인 중 1월에 해당하는 제품이다. 4월과 9월 제품에도 다른 독재자의 이름을 붙였다. 4월은 ‘스탈린스 펀치(Stalin's Punch)’, 9월은 ‘무솔리니스 머그(Mussolini's Mug)’다.
주류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인도에는 히틀러의 이름을 내건 다양한 ‘상품’이 존재한다. 나치의 상징인 하켄크로이츠(갈고리 십자 모양)로 가득 찬 남성 옷 가게 ‘히틀러’를 비롯해 ‘히틀러 크로스 피자’ ‘히틀러 헤어 뷰티 살롱’ ‘히틀러 진스’ ‘키드 네이션 히틀러’ 등의 가게가 영업을 했거나 지금도 영업하고 있다. 이 중 ‘히틀러’는 지난해, ‘히틀러 크로스 피자’는 2006년에 유대인의 반발로 상호를 바꿨다. 2011년 뭄바이의 한 방송사는 억척스러운 아줌마의 이야기를 다룬 TV 프로그램을 ‘히틀러 디디’라고 지었다가 바꾸기도 했다.
독재자의 이름을 내거는 이유는 그만큼 장사가 잘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른바 ‘히틀러’ 와인을 생산하는 비니 루나르델리의 안드레아 루나르델리 씨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히틀러 와인에 대해 비판적인 e메일이 한 통 올 때 이 와인을 어디 가면 살 수 있는지 문의하는 e메일은 100통 온다”며 “이 와인은 팔린다”고 말했다. 1995년부터 생산한 히틀러 와인은 매년 2만 병 정도 판매된다. 이 업체 전체 판매량의 4분의 1에 해당한다. 그는 “대부분의 사람은 재미 삼아 이 와인을 산다”고 덧붙였다. 이 업체는 레닌, 무솔리니 등 다른 독재자의 사진이 라벨에 담겨 있는 와인도 제작해 판매하고 있다.
인도의 옷 가게 ‘히틀러’ 주인인 마니시 샨다니 씨도 상호를 바꾸기 직전 로스앤젤레스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히틀러라는 가게 이름으로 좋은 반응을 얻었고 장사도 잘됐다”며 “이름을 바꾸면 매출이 급격히 하락할까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13년 전부터 비니 루나르델리와 비슷한 히틀러 와인을 생산해 판매하는 이탈리아의 파비오 보고 씨는 “최근 판매가 크게 늘었다”며 “경제위기가 사람들로 하여금 예전이 더 좋았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판매되는 100병 중 95병이 히틀러 와인”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사이먼비젠탈센터의 설립자이자 랍비인 마빈 하이어 씨는 “히틀러의 이미지가 담긴 와인을 마시는 것은 모욕이며 홀로코스트(나치의 유대인 대학살)에 대한 반성의 기억을 훼손하는 것”이라며 “단순히 재미로 마시는 것이 아니라 나치즘에 대한 금기를 조금씩 무너뜨리려는 사람이 곳곳에 있다”고 우려의 뜻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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