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이석기의 묵비권, 한총련 취조투쟁 빼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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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9월 10일 03시 00분


수사단계선 침묵… 재판땐 “날조” 주장
과거 일심회-왕재산 사건때도 비슷
국정원 “처음부터 예상… 혐의입증 자신”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51)은 내란음모 등의 혐의로 구속된 이후 입을 닫았다. 국가정보원에 따르면 이 의원은 수사관이 어떤 증거를 들이밀어도 묵비권을 행사하며 침묵을 지키고 있다. 반론이나 해명도 일절 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구속되기 전 수 차례에 걸쳐 "내란음모는 국정원의 조작이다" "진실과 정의는 반드시 승리한다"며 목소리를 높이던 모습과는 대조적이다.
공안당국은 이 의원이 체포와 수사 과정에서 보인 행동들이 과거 이적단체 공안사범들과 유사하다고 보고 있다. 경찰대 치안정책연구소와 국정원 등에 따르면 그동안 이적단체는 자체적으로 '보위수칙' '보안수칙' 등을 제작해 돌려보며 경찰과 검찰 수사, 법정에서의 행동강령을 숙지해왔는데 이 의원의 수사대응방식이 이를 빼닮았다는 것이다.

동아일보가 9일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이 1990년대 중반에 만든 보안문건 '한총련 1만간부 지침서'를 입수해 살펴보니 경찰과 검찰 수사단계에서의 행동양식과 '취조투쟁' 방식이 구체적으로 적혀 있었다. 이 문건에는 △저들이 아무리 구체적인 증거를 들고 나와도 당황하지 말고 투쟁한다는 자세로 임하라 △시간을 최대한 끌어가며 수사에 임해야 적들이 불안하고 초조해한다 △"나는 멍청하다. 아무것도 모른다. 다만 애국적·양심적으로 살려한다"는 모습으로 일관하라는 등의 내용이 담겨있다. 수사 나흘째까지 국정원이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해도 묵비권을 행사하는 이 의원의 행동과 일치한다.

물론 불리한 진술을 하지 않을 권리인 묵비권은 헌법에 보장돼있다. 1990년대 이후 공안사범은 경찰과 검찰의 수사단계에서 묵비권을 행사하다가 법정 재판에서야 목소리를 내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국내 좌파단체를 연구해온 유동열 경찰대 치안정책연구소 선임연구관은 "이 의원의 경우 녹취록 등 명확한 증거가 있기에 묵비권을 행사하는 게 가장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며 "일심회, 왕재산 등 일련의 간첩사건에 연루된 공안사범도 모두 묵비권을 행사했다. 이는 취조투쟁의 기본"이라고 말했다.

공안사범들은 단체의 계열과 관계없이 1970~1980년대에는 강경한 자세로 수사에 임해왔지만 1990년대 들어 취조대응 방식을 묵비권 활용으로 전면 수정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런 경향은 1990년 '남한사회주의노동자연맹(사노맹) 사건'에서도 확인된다.

공안당국에 따르면 사노맹은 조직원이 안기부 조사를 받은 경험을 토대로 작성한 '조직 보위투쟁 교훈지침서'에 따라 수사대응 방식을 전면 수정했다. 이 지침서에는 △훌륭한 동지들도 5일만 지나면 (안기부의 심리전에 말려) 떠들고 웃고 마시며 수사를 받는다. 이것이 AGI(안기부)의 힘이다 △AGI가 물리적 도구나 약물을 쓰는 고문이 아닌 고도의 심리전으로 상대를 궤멸시킨다는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과거 공안사범은 강압수사에는 강경한 태도로 대응해왔다. 1980년대 사노맹은 "맞는 것도 보약이다. 독종 중의 독종으로 공격하라" "조직을 대라고 하면 '살아나가서 (너를) 칼로 배 창자를 긁겠다'고 협박하라"는 등 강압 신문에 대응하는 보위 전술을 구사했다. 하지만 수사당국이 '인격적 수사' '합법수사'를 내세우며 고도의 심리전을 펼치자 증거를 제시해도 범죄 사실은 물론 이름도 밝히지 않는 등 묵비권을 행사하는 '시간 끌기'식 투쟁전술로 전환했다는 것이다.

피의자가 묵비권을 행사하면 혐의 입증은 증거 능력에 따라 좌우된다. 혐의를 입증할 증거가 취약할수록 '묵비권 전략'이 성공하기 마련이다. 다만 묵비권이 무조건 피의자에게 유리한 것만은 아니다. 대검 관계자는 "수사단계에서 묵비권을 고집했다가 실제 재판에서 유죄판결을 받으면 양형이 더 늘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국정원은 처음부터 이 의원이 묵비권을 행사할 걸 예상했기 때문에 명백한 증거로서 혐의를 입증한다는 방침이다. 국정원 관계자는 "공안사범은 수사단계에선 무조건 묵비권을 행사하고 재판에 가서야 변호인과 함께 모든 증거가 조작됐다는 식으로 주장한다. 틀에 박힌 수법"이라며 "이 의원의 진술 없이도 충분히 혐의를 입증할 만큼 증거를 확보했다"고 자신했다.

조동주 기자 dj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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