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찬식 칼럼]교학사 교과서에 가하는 몰매, 정당한가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11일 03시 00분


일각의 오류·친일 비판… 단순한 실수이거나 과장 많아
우파 교과서 공격하는 좌파 역사학계의 이중 잣대
역사교육 강화한다지만 올바른 방향은 요원한 과제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길 한복판에서 매를 맞고 있다. 거의 집단 린치 수준이다. 말리는 사람도 거의 없다. 교학사가 펴낸 고교 한국사 교과서 얘기다. 매를 맞아도 싸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앞뒤를 살펴보면 왜 몰매를 맞아야 하는지 납득하기 어렵다.

이 교과서는 우파 시각에서 쓴 한국사 교과서다. 7종의 다른 교과서와 함께 검정 절차를 밟았다. 최종 합격 판정에 앞서 올해 5월 본심사를 통과했을 때부터 좌파 세력의 집중 표적이 됐다. 민주당까지 나서 “김구 선생과 안중근 의사를 테러리스트로 표현하고 있으며 4·19혁명을 학생운동으로 폄하하고 5·16군사정변을 혁명으로 미화하고 있다”고 공격했다. 헛발질이자 사실무근이었다. 교학사 교과서 최종본에는 ‘4·19혁명’ ‘5·16군사정변’ ‘5·18민주화운동’으로 기술되어 있었다.

일부 세력은 2일 교학사 교과서의 일반 공개가 이뤄지자마자 현미경 분석에 들어갔다. 민주당과 역사학계는 ‘친일 독재 미화 교과서’라고 주장했다. 일부 매체도 원색적인 비판에 나서고 있다. ‘곳곳에 오류가 있고, 사실을 왜곡한 것은 물론이고 친일과 독재를 미화하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는 식이다.

일부 오류는 발견된다. 217쪽에는 ‘명성황후’를 ‘민비’로 적고 있다. 그러나 190쪽에는 몇 번에 걸쳐 명성황후로 나와 있다. 민비라고 쓴 것은 바로잡아야 한다. 독립운동가 김약연 선생을 김학연으로 썼다는 것에 대해 찾아보니 226쪽 사진 설명에는 잘못 표기되어 있었으나 251쪽 본문에는 김약연으로 맞게 쓰여 있었다.

반면에 조선과 명나라의 교역을 공무역으로 써야 하는데 조공무역이라고 잘못 썼다고 했으나 118쪽에는 공무역으로 나와 있었다. 백두산을 장백산으로 썼다고 한 것도 찾아보니 백두산으로 표기되어 있었다. 일부 학자의 잘못된 분석도 있었다. 1922년 일제가 조선 교육령을 내리면서 조선에 일본어 교육을 강화했는데도 교학사 교과서는 ‘한국어 필수화’라고 썼다고 했다. 그러나 1922년 당시는 3·1운동 직후 일제가 이른바 ‘문화 통치’를 하던 때라 한국어는 교육 과정에 필수로 들어가 있었다. 일제가 한국어 교육을 금지한 것은 1938년의 일이다.

틀린 것은 반드시 수정해야 하지만 단순한 실수를 ‘친일’로 몰아가는 근거로 내세우고, 이 정도 잘못을 놓고 “책장을 넘길 때마다 오류가 있다”고 표현하는 것은 과도하다. 일부 단체는 ‘한국판 후소샤 교과서’라는 꼬리표를 붙였다. 일본의 극우 교과서와 같은 책으로 매도한 것이다. 이 교과서에 대한 최근 비판은 분명 ‘마녀사냥’으로 흐르고 있다.

더구나 어느 역사적 사건은 왜 작게 취급하고 어떤 것은 크게 취급했느냐고 시비를 거는 것은 수긍하기 힘들다. 교과서 검인정 체제는 다양한 교과서를 만든다는 취지에서 도입됐다. 어느 역사학자는 “다른 분야는 보수 세력이 장악했으나 역사학계만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좌파 역사학자들의 득세를 자신 있게 드러낸 말이다. 이들이 쓴 여러 권의 교과서에 맞서 우파 교과서 하나가 나왔다. 당연히 관점이 다를 수밖에 없다. 교학사 교과서가 검정을 통과한 것은 정부가 정한 집필 기준 내에서 교과서를 썼음을 의미한다. 기준을 벗어나면 검정을 통과할 수 없다. 정해진 범위 내에서 우파적 역사 해석을 했다는 뜻이다.

공격의 선봉에 서 있는 사람들은 주로 역사학자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2008년 좌편향으로 비판 받았던 금성출판사의 근현대사 교과서에 대해 이명박 정부가 수정 권고를 하자 이번과는 정반대 반응을 보였다. 여러 단체들이 “다양성을 중시하는 검정교과서 취지를 무력화하는 일”이라고 반발했다. 최근에도 금성출판사 교과서의 필자였던 한 학자는 “역사 해석은 다를 수 있다. 교과서 집필의 자율성을 해치는 어떤 시도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던 사람들이 지금은 교학사 교과서의 검정 취소를 요구하고 있다. 처음부터 우파 교과서의 싹을 잘라버려야 한다는 살벌함 같은 것이 느껴진다.

교학사에는 불매 운동을 하겠다는 전화가 빗발친다고 한다. 우파 교과서의 수난은 역사 교육에서 우파 학자와 역사관이 어떤 처지에 놓여 있는지 보여준다. 아울러 박근혜 대통령이 강화하겠다는 올바른 역사 교육이 얼마나 험난한 일인지 실감나게 전해주고 있다.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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