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중과 배려는 사라지고 거친 언사만 남았다. 19대 국회의 현주소다. 국회선진화법으로 ‘몸싸움’은 없어졌지만 그 틈새를 ‘말싸움’이 비집고 들어왔다. 의원들 사이에서도 “국회가 개원한 지 고작 1년여가 지났을 뿐인데 상대방에 대한 공격과 흠집 내기가 도를 넘었다”는 반응이 나온다.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선 정치권부터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 반말에서 욕설까지
동아일보와 ‘오픈캉그레스’가 수집한 의원들의 막말 또는 상대 비하 발언 377건 가운데 동료 의원과 증인에게 반말을 쓴 사례는 156건, ‘당신’이라고 부른 사례는 118건이었다. 또 ‘뻔뻔(하다)’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사례가 49건, ‘(이, 그, 저) 따위’가 40건, ‘건방(지다)’이 8건, ‘×발’ 등 욕설 6건이었다.
국회에서는 상대 의원에게 ‘존경하는 ○○○ 의원’이라고 부른다. 의원은 지역 유권자를 대표하기 때문에 지역 유권자를 존중한다는 차원이다. 하지만 19대 국회 들어 동료 의원을 “당신”이라고 호칭하거나 반말을 사용하는 사례가 수시로 등장하고 있다.
이번 막말 조사에서 서영교 정청래 박범계 등 민주당 의원이 1∼3위에 올랐다. 김태흠 김성태 이장우 등 새누리당 의원들이 4∼6위로 뒤를 이었다. 이 순위는 ‘장외 설전’을 제외하고 회의록만 근거로 한 정량 분석이어서 정치권 내부의 평가와는 다를 수 있다.
서 의원은 장관이나 공직후보자에게 ‘당신’이라는 표현을 11차례 썼다. 반말을 사용한 것은 9차례다. 황교안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게 “당신들이 입 다물고 출세가도를 달리는 동안”이라고 했고,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 후보자에겐 “국민의 혈세가 1억이 넘게 당신에게 가고요”라고 말했다. 서 의원은 “당신이라는 표현은 평상시 많이 쓰는 언어 습관”이라며 “여당 의원이나 관료들이 야당 여성 의원이라고 답변을 피하거나 부적절한 태도를 보일 때 대응하는 차원에서 사용했다”고 해명했다.
정 의원은 동료 의원을 동물에 비유했다. 그는 김태흠 의원에게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인다”고 했다. 김 의원은 자신의 질의 때 “돼지라고 불린 김태흠 의원입니다”라고 응수했다. 박 의원은 자신이 ‘×발’이라는 욕설을 했다는 새누리당 김재원 의원의 주장에 대해 “술 드셨어요? 제가 언제 ‘×발’이라고 했어요?”라며 “‘에이 씨’ 했습니다”라고 주장했다.
김태흠 의원은 “지금 뭐하는 거야!” 등 반말을 12차례 했고 ‘따위’라는 표현을 한 번 썼다. 그는 “여야 간 쟁점이 첨예하게 엇갈리는 국정원국조특위에서 일하다 보니 다소 발언이 과한 측면이 있었다. 진중한 모습을 보이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1∼6위에 초선 의원이 4명이나 되는 점도 눈에 띈다. 초선 의원이 당의 ‘최전선 전투병’으로 내몰리는 상황과도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 지난해 10월, 올해 6월 접전
의원들의 ‘말싸움’은 지난해 10월(69건)과 올해 6월(66건)에 집중됐다. 대통령 선거를 앞둔 지난해 10월, 여야의 긴장감은 국정감사에 그대로 반영됐다. 야당 의원들은 상임위별로 정부 부처를 강하게 질타했고, 여당 의원들은 여기에 말싸움으로 맞섰다. 교육과학기술위원회에서 민주당 이상민 의원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고 있어”라고 고함을 치자 새누리당 서상기 의원은 “어디다 대고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하는 거)야”라고 대꾸했다. 그러자 이 의원은 “어디다 대고 반말이야”라고 다시 맞받았다.
올해 6월엔 상반기 막바지 법안 처리를 위해 상임위 곳곳에서 파열음이 나왔다. 특히 법사위에서 대립이 심각했다.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은 야당 의원들을 향해 “어디서 누구를 가르치려고 들어!”라고 소리쳤고, 민주당 박범계 의원은 “말 같은 소리를 해야지”라고 대꾸했다. 법사위(68건)와 국정원 국정조사(63건)가 가장 치열한 전쟁터였다는 사실도 통계로 입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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