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해제 MB5년]<25>MB “감사원장 뜻대로 하게 해줘”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14일 03시 00분


양건 감사원장 취임초 “사무총장 잘라야겠다”… 靑 발칵

2011년 3월 11일 이명박(MB)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양건 전 감사원장(왼쪽). 경기고 때 한일회담 반대 데모를 주동하고, 서울대 법대 재학 시절 학생운동에도 가담했던 양건은 MB 청와대에결코 녹록지 않은 인물이었다. 동아일보DB
2011년 3월 11일 이명박(MB)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양건 전 감사원장(왼쪽). 경기고 때 한일회담 반대 데모를 주동하고, 서울대 법대 재학 시절 학생운동에도 가담했던 양건은 MB 청와대에결코 녹록지 않은 인물이었다. 동아일보DB
“이명박 대통령이 2010년 9월 16일 김황식 감사원장을 국무총리 후보로 지명하고는 그 빈자리에 정동기 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을 앉힌… 아니, 앉히려고 한 날은 그 해도 마저 저물던 12월 31일이었다. MB와 정동기는 함께 열흘 남짓 버텼다. 대통령이 어떻게 비서를 (과)감히 감사원장으로 투입하느냐는 비판 여론 위로 그를 둘러싼 전관예우 ‘7개월, 7억 원’의 비난 여론이 얹혀 이듬해 1월 12일 만사휴의(萬事休矣)로 되돌아갔다.”

2013년 8월 26일 양건 감사원장 퇴임 후 문화일보 홍정기 논설위원은 ‘위헌(違憲) 경계선상의 감사원’이라는 제목의 시론에서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자의 낙마 전후를 이렇게 회고했다. 정동기 낙마의 후유증은 컸다. 특히 안상수 대표 체제의 한나라당에 대한 MB의 배신감은 극에 달했다.(동아일보 3월 30일자 ‘비밀해제 MB 5년-MB 손 부들부들 떨며 분노’ 참조)

돌이켜보면 자업자득이었다. 감사원이라는 헌법기관에 대한 MB의 이해가 그만큼 부족했다는 증거가 되고 말았으니….

여하튼 정동기 낙마 이후 MB의 청와대는 거의 ‘멘붕 상태’에 빠졌다. 감사원장 공백기간이 벌써 4개월이나 돼가고 있었다. 조무제 전 대법관이 다시 거론됐고, 정동기 감사원장 내정 때 국민권익위원장으로 함께 발표된 김영란 전 대법관을 ‘긴급 차출’하자는 아이디어도 나왔다. 하지만 당사자들이 모두 거절했다.

임태희 대통령실장은 법조인 출신으로 재선이었던 한나라당 장윤석 의원까지 후보로 건의했다.

임태희=“(난감한 표정으로) 다 안 한다고 하는데 혹시 장윤석 의원은 어떻습니까? 성품도 꼿꼿하니까 본인이 국회의원만 던진다면 괜찮지 않겠습니까?”

MB=“그 사람이 (국회의원 버리고) 하겠어?”

MB의 판단이 옳았다. 감사원장 자리는 돌고 돌아 결국 MB 정부 초대 권익위원장을 역임한 양건 전 한양대 법대 교수에게 돌아갔다.

딱히 누가 추천했다는 정황은 찾아보기 힘들다. 다만 임태희의 기억은 이렇다.

“양건 전 권익위원장은 (대통령이 보는) 청와대의 DB에 올라와 있던 인물이었다. 또 권익위원장 때의 인상이 괜찮았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측근인) 이재오 전 의원에게 권익위원장 자리를 주기 위해 물러나게 한 모양새가 됐기 때문에 대통령도 마음의 빚이 있었던 것 같다.”

문제는 청문회. 하지만 양건에겐 강원도 원주에 사놓은 땅 정도가 있었을 뿐이고, 그마저도 투기 시비의 여지가 적은 ‘맹지(盲地·도로와 맞닿은 부분이 전혀 없는 토지)’여서 충분히 돌파해 나갈 수 있다고 판단했다.

정동기 후유증 탓인지 청문회도 감사원의 독립성 문제에 맞춰졌다.

이상민 의원=“독립성을 지킬 수 있느냐가 핵심입니다.”

양건 후보=“제 의지는 분명합니다.”

이상민 의원=“아니, 그렇다면 몸으로 증명해줘야 되지 않겠습니까?”

양건 후보=“필요하면 몸으로라도 하겠습니다.”

손범규 의원=“지금 이명박 정권 말기인데 만약 다음 정권이 들어서서 ‘좀 그만 뒀으면 좋겠다’고 하면 그때는 어떻게 하실 겁니까?”

양건 후보=“정권이 바뀌더라도 임기를 지키겠습니다!”

김진애 의원=“지금 말이죠, ‘의전 감사원장’ 정도 제치는 건 이 정부에서 문제도 아닙니다. 사무총장 동원할 수도 있습니다. (MB 측근인) 은진수 감사위원을 동원할 수도 있습니다.”

청문위원들이 양건을 자극한 것일까. 양건은 취임(3월 11일) 직후부터 정창영 사무총장과 충돌했다. 양건의 기억.

“정창영 사무총장을 내가 결국 잘랐는데, 이 사람은 내가 취임해서 오니까 웬만한 인사안을 다 짜갖고 와서 곧바로 결재해 달라고 했다. 내가 ‘놓고 가라. 검토한 뒤 결과를 알려 주겠다’고 했더니 불만이 쌓인 듯했다. TK(대구·경북)에다가 이명박 대통령의 신임이 두터워서 그런지는 몰라도 나한테 ‘이전 원장님들은 두 말 없이 결재해줬는데 왜 못 믿겠다는 듯이 그러시느냐’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잘라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창영의 생각은 달랐다. “감사원장은 최고 의결기구인 감사위원회 의장을 겸하는 자리입니다. 감사위원회는 재판부고, 사무총장 휘하의 감사원 조직은 검찰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만약 감사원장이 감사에 관여하게 되면 그건 판사가 수사도 하고 판결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전임 김황식 원장은 ‘재판은 내가 할 테니 감사는 사무총장이 하라’고 한 겁니다. 인사도 사무총장을 통해서 하게 돼 있습니다. 하지만 양건 원장은 감사원 사람들에 대한 불신이 강했습니다.”

게다가 취임 직후인 5월, MB 대선 캠프 출신인 은진수 감사위원이 부산저축은행 그룹으로부터 1억 원을 받은 혐의로 출국금지를 당하는 일이 터졌다. 기존 감사원에 대한 양건의 불신은 더욱 커졌다.

“에이, 씨×….” 정창영은 양건이 간부회의 자리에서 감사원 직원들을 마치 부패한 집단이나 되는 것처럼 얘기했다며 분을 삭이지 못했다. 충돌은 계속 이어졌다. 양건은 사학 감사의 칼을 꺼내 들었다. ‘대학등록금 1000만 원 시대’가 정치·사회적 이슈로 떠오르자 감사관 400명을 동원해 대학재정 감사에 나섰다. 전체 감사인력의 3분의 2나 동원한 대규모 감사였다. 정창영은 ‘양건 식(式)’ 감사대상 선정과 방식에 반대했다. 특히 사학(私學)에 대해서는 감사권한이 없었다. 한다면 대학 감독권을 가진 교육부 직원들을 앞세울 수밖에 없었다. 그건 편법이었다. 게다가 비리가 드러난 사학 감사라면 모를까 사학 전반을 감사한다는 건 ‘월권’이라고 판단했다. 무엇보다 감사위원회 의장인 감사원장이 직접 감사를 주도한다는 건 일종의 ‘제척(除斥) 사유’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정창영의 눈에 양건의 대학 감사는 공명심을 앞세운 ‘여론 감사’였다.

정창영이 반대하자 양건은 노발대발했다. 여론은 양건의 편이었다. 양건이 개설한 ‘맑은 교육 188 콜 센터’엔 교육비리 신고가 쇄도했다.

청와대는 그런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정창영에게 ‘악역’을 맡기기도 했다. 권재진 민정수석비서관(나중에 법무장관 역임)은 양건이 C일보와 ‘유착 관계’인 것 같다는 보고가 들어오자 정창영에게 “감사원장이 특정 언론과 너무 가까우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우려를 전하라”고 당부했다. 정창영은 개인적으로 권재진의 경북고 1년 후배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주의 통보’가 민정수석 개인의 뜻일 리는 없었다.

“사실 그런 얘기는 권 수석이 직접 해야 하는데, 내가 그런 말을 전했으니….”(정창영)

양건은 칼을 뽑아 들었다. 대통령 보고 자리에서 직접 ‘정창영 문제’를 꺼냈다.

“사무총장은 바꿔야겠습니다.” 양건은 이 대목에서 권재진이 ‘여기서 꺼낼 얘기가 아닙니다’라는 뜻으로 눈짓을 보냈다고 했다. 그래서 대통령에게 “사무총장 교체가 이뤄지지 않으면 제가 그만 두겠습니다”라고 쐐기를 박았다고 당시를 기억했다.

권재진의 증언은 조금 다르다. 권재진은 “감사원장의 대통령 보고 자리에는 반드시 민정수석이 배석한다. 그런데 내 기억으로는 양 원장이 대통령에게 직접 (사무총장 경질 건을) 얘기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임태희의 기억도 권재진과 같다. “나하고 민정수석에게 사무총장을 바꿔야겠다고 하기에 처음엔 ‘감사원에 좀 더 적응하시고 난 다음에 바꿔도 되지 않겠느냐’고 만류했다. 하지만 양 원장의 고집이 대단했다. ‘대통령한테 말씀드린 거냐? (안 바꾸면) 나, 못 한다’고까지 했다.”

큰일이었다. 정동기 낙마사태에 이어 취임한 지 몇 달 되지 않은 양건까지 사퇴해 버리면 MB 정권은 치명상을 입게 된다. 양건이 그런 급소를 노리고 승부수를 띄웠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시는 그런 걸 따질 계제(階梯)가 아니었다.

임태희는 MB에게 상황의 심각성을 보고했다.

MB는 흔쾌하게 양건의 손을 들어줬다. “일을 제대로 해보겠다는데 양 원장 뜻대로 해줘. 정창영은 다른 적당한 곳으로 보내면 되잖아.” 정창영은 7월 사무총장직에서 물러나 이듬해 코레일 사장에 임명된다.

김창혁 선임기자 chang@donga.com

#이명박#김황식#정동기#양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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